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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얕보다 박사시험 낙방할 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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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하이젠베르크는 현대물리학의 기본 개념인 불확정성 원리를 창안한 20세기 물리학의 거장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아 김나지움을 졸업한 지 불과 3년 만에 22세의 나이로 뮌헨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이 천재 과학자도 박사 시험에서 낙방할 뻔한 위기에 몰린 쓰라린 경험이 있었다.

1923년 하이젠베르크는 난해한 분야인 유체역학과 관련된 우수한 논문을 완성하고 뮌헨대학에서 박사학위 구두시험을 보았다. 하지만 이 시험장에서 뮌헨대학의 실험 물리학자였던 빌헬름 빈에게 잘못 걸려들어 전공인 물리학에서 아주 낮은 점수를 받아 가까스로 졸업하는 일생 일대의 수모를 당했다.

당시 독일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실험실에 한 번도 들어가지 않고도 지도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박사 논문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론 물리학자와 실험 물리학자들이 동석한 구두시험장을 통과해야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당시 빈은 하이젠베르크에게 패브리-페로 간섭계,현미경 분해능 문제, 납축전지의 원리 등에 대해 질문했다. 그러나 실험실에 거의 들어가 본 적이 없었던 하이젠베르크는 빈의 질문들 가운데 어느 것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이리하여 하이젠베르크는 박사 시험에서 탈락할 위기에 놓였으나, 지도교수였던 조머펠트가 그를 아주 대단한 천재라고 우겨대 간신히 턱걸이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박사 시험 성적은 전공인 물리학은 턱걸이 점수인 3점이었고, 부전공인 수학은 1점, 천문학은 2점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종합점수는 3점이었다.

박사 시험 성적이 나빴지만 하이젠베르크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었던 괴팅겐의 물리학자 막스 보른은 그를 조교로 받아 주었고, 보른의 지도 아래 하이젠베르크는 단 1년 만에 '교수자격 취득과정'(Habilitation)을 통과했다.

1924~25년 겨울 하이젠베르크는 어려운 독일 경제 상황에서도 록펠러 재단 장학생으로 덴마크의 닐스 보어와 함께 연구할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되었고, 보어로부터 물리학의 철학적 의미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훗날 하이젠베르크는 "뮌헨의 조머펠트에게는 물리학 분야가 할 만한 것이라는 희망을 배웠고,괴팅겐의 막스 보른에게서는 수학을, 그리고 코펜하겐의 보어에게서는 철학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하이젠베르크는 이 서로 다른 학문적 전통을 두루 섭렵한 결과 1925년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역학 체계를 완성했다.

1927년 초 하이젠베르크는 감마선 현미경에 의한 사고실험을 통해서 불확정성 원리라는 현대물리학의 근본적인 개념을 창안해 냈다. 감마선 현미경 사고실험은 하이젠베르크의 박사 학위 구두시험에서 빈이 하이젠베르크에게 질문했던 두번째 질문인 현미경 분해능 문제와 연관된 것이었다. 박사 시험에서 낭패를 본 뒤 이 문제가 하이젠베르크의 뇌리에 강하게 자리잡아 결국 그는 자신의 최대 업적을 창안하게 되었던 것이다.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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