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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정채봉씨 동화 우여곡절 끝 영화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아이들과 할머니가 주인공인 영화에 손님이 들겠어요? 돈을 대려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래도 영화를 만들겠다고 하니…."

장길수(47)감독은 6년 전의 이 말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지난해 1월 암으로 타계한 아동문학가 정채봉씨가 그에게 한 말이다. 고인은 그의 소설 '초승달과 밤배'를 읽고 눈물을 펑펑 흘리며 찾아와 영화를 만들겠다고 요청한 감독에게 이렇게 걱정했다. 정씨의 다른 작품인 '오세암'이 1990년 영화로 선보였으나 흥행에선 성공하지 못했던 까닭에 고인은 '초승달과 밤배'의 영화화에 대해서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정씨의 말처럼 이 작품은 6년을 기다려야 했다. 투자자가 선뜻 나서지 않아 장감독 자신이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따내 제작까지 겸했다. 그리고 올 3월 촬영에 들어가 지난주에 카메라를 접었다. 오는 8월 개봉할 예정이다.

장감독은 3년 전 고인의 얼굴도 잊을 수 없다. 제작비를 겨우 마련해 찾아간 그에게 정채봉씨는 "역시 생각보다 힘들지? 어려울 거야"라며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당시 암이 재발해 몸이 무척 안좋았던 그는 "반드시 시사회에 참석할게"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약속은 지킬 수 없게 됐다. 장감독은 대신 고인의 유가족과 인터넷의 '채봉사랑' 동호회원을 초청해 정씨를 추모할 계획이다. "모두 고인의 덕분입니다. 시나리오를 읽은 스태프와 연기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정말 순조롭게 찍었습니다."

장감독은 "6년 전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 즉 영혼이 정화되는 듯한 기분을 관객과 공유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라며 즐거워했다.망자(亡者)와 생자(生者)의 두터운 인연, 나아가 소설과 영화의 유쾌한 조우를 목격하는 듯했다.

'초승달과 밤배'는 갯마을에서 자라난 한 소년의 천진난만하고 따뜻한 이야기다. 때마침 연말께 고인의 '오세암'이 애니메이션으로도 선보인다. 우리 문화계의 보이지 않는 연대, 지속적인 상호 침투라는 측면에서 반갑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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