換亂때 쓰러진 기업들 요즘은…:경기 호전… 새주인 속속 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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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1997년 외환·금융위기를 전후로 쓰러진 기업들의 처리가 마무리단계에 들어갔다.

채권단의 대규모 빚 탕감에 힘입어 회사 장부가 깨끗해지고 경기가 좋아지자 투자자들이 부실 기업의 새 주인이 되겠다며 뛰어들고 있다. 이들은 고수익을 노리면서 인수합병(M&A)자금을 모아 정상화를 앞당길 돈을 넣어주며 쓰러진 기업들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일부 투기성 펀드들은 부실기업을 정상화해 기업가치를 높이기보다 값을 올린 뒤 되팔아 차익을 챙기는 데 급급한 실정이다.이런 투기 자금에 넘어간 기업은 자칫 주인이 수시로 바뀌는 '떠돌이 기업'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퇴출 대상 솎아낸 뒤 활발해진 M&A=98년 이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한 1백4개사 가운데 시작 전 탈락(8개), 회사분할(4개), 합병(17개) 등을 제외한 83개사가 실제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중 28개사는 이미 졸업했다.19개사는 자율 추진 기업으로 선정됐고, 이 가운데 13개사는 내년까지 졸업할 전망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이르면 이달 말까지 영창악기·신송식품·맥슨텔레콤 등 3개사가, 올 하반기에 신원·한창제지·동방·성창기업·대경특수강·벽산·벽산건설·삼일공사 등 8개사가 조기 졸업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21개사는 워크아웃 상태에서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다. 채권단은 장사가 잘되는 사업부문과 그렇지 않은 사업부문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고 보고 상당수 기업을 여러 사업 단위로 쪼개 처리하기로 했다. 대우전자를 비롯해 남선알미늄·새한·새한미디어·미주제강·KP케미칼(옛 고합) 등이 그런 예다.

4백70여개 법정관리·화의 기업도 새 주인 찾기와 자체 정상화가 한창이다. 서울지방법원 파산부는 2000년 6월 대법원 홈페이지(www.scourt.go.kr)에 M&A 대상 정리기업으로 70개사를 소개했으나 상당수 기업이 새 주인을 찾는 바람에 이를 40개 안팎으로 줄였다. 법원이 M&A를 권고해 주간사 선정 등 매각 절차에 들어간 기업은 현재 30개를 웃돈다.

금감원 관계자는 "채권은행들이 지난해 부실 조짐이 있는 1천5백여개 기업의 신용위험을 평가해 1백56개사를 퇴출대상으로 솎아낸 후 여기서 제외된 기업들에는 투자할 만하다는 인식이 형성되며 M&A가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투기 대상이 된 부실기업=부동산 시장과 주식시장을 좇는 투기자금처럼 M&A시장에도 단기 차익을 노린 돈이 몰리면서 부실기업이 투기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진행된 매각 입찰에서 과열 양상은 더욱 뚜렷해졌다. 지난달말 마감된 뉴코아 입찰에는 기업구조조정회사(CRC) 등을 포함해 모두 59개사가 달려들었다.이에 앞서 극동건설에는 10여개 업체가 응찰했다.

오는 19일 국제상사에 대한 채권과 지분 매각을 앞두고 10여개 CRC가 눈치 작전을 펴고 있다.

일부 투자자문사나 CRC의 경우 아직 발행되지 않은 주식에 웃돈을 얹어 사고파는 경우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채권자가 채권 회수를 최우선 목표로 설정해 인수자의 경영능력 등 적격성을 제대로 따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부실기업 투자자가 기업경영을 할 실력을 갖추었는지, 투자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는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연원영 자산관리공사 사장은 "최근 S사를 인수한 A사의 뒤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정선구·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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