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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 지방권력, 요동치는 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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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방 공직사회가 요동치고 있다. 새로운 자치단체장의 코드 인사 때문이다. 6·2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권력이 ‘신 여소야대(新 與小野大)’로 개편된 데 따른 것이다. 특정 정당 소속 단체장이 장기간 집권해오다 단체장과 함께 소속 정당까지 바뀐 지역의 경우 대폭적인 물갈이 인사가 진행되고 있다.

김준한(행정학) 아주대 교수는 “조직 장악의 첫 단계는 인사이지만 중요한 것은 업무능력에 따라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새로운 야권 단체장들의 코드 인사 유형을 셋으로 나눠 그 실태를 짚어본다.

보은·코드형

요즘 지방은 보은과 코드 인사 태풍이 불고 있다. 지방선거 때 후보를 도왔던 인물에 대한 보은이고 자신의 정치적 이념과 맞는 인사들에 대한 요직 기용이 판치고 있다는 얘기다.

김두관 경남지사는 단일화 때 약속한 ‘공동지방정부’ 구성 차원에서 정무부지사에 농민운동가 출신으로 민노당 최고위원을 지낸 강병기(50)씨를 1일 임명했다. 광역자치단체의 정무부지사에 민노당 출신이 임명된 것은 처음이다. 향후 도정이 민노당 정책코드에 맞춰질 것이라는 예고다.

안희정 충남지사 역시 5일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김종민씨를 정무부지사로 내정했다. 김 내정자는 안 지사와 같은 논산 출신이다. 6·2 지방선거 때는 안 지사 선거캠프에서 대변인으로 활약했다. 우근민 제주지사는 이날 자신의 선거캠프에서 본부장을 맡았던 김부일 전 KBS 제주방송총국 보도국장을 환경부지사로 내정했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지방선거 후보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신동근(치과의사)씨를 최근 정무부시장으로 임명했다. 시장 비서실장에는 국회의원 시절 수석 보좌관을 지낸 김효섭씨를 내정했다. 인천시 최고 요직 두 자리가 모두 선거 보은형 인사다. 공보관(4급)직을 개방형의 대변인 제도로 바꾸기로 했는데 외부의 능력 있는 인사를 영입한 게 아니고 시장직 인수위 대변인을 지낸 윤관석씨를 내정했다. 역시 송 시장의 선거를 도왔던 핵심 측근이다. 이시종 충북지사는 최측근으로 알려진 백상진씨를 대외협력보좌관으로 임명했다. 정책보좌관에는 이 지사 선거캠프에서 공약개발을 담당했던 김문종씨를 앉혔다. 지사 비서실에서 근무할 5급 비서관과 6급 수행비서 자리도 측근들로 채웠다.

코드 인사는 교육감도 마찬가지다. 장만채 전남도교육감은 최근 도교육청 기획관리국장에 고등학교 동문인 최원선 나주공공도서관장을 임명했다.

한경대 이원희(행정학과) 교수는 “새 단체장들의 철학을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코드인사가 필요하나 자칫 정도가 지나칠 경우 공직사회 질서를 파괴하며 직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킬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선윤·김방현 기자, 전국종합



강압·보복형

“전임 지사가 올 초 불출마를 선언한 뒤 임명한 출자·출연기관장은 사표를 내는 게 바람직하다.”

무소속인 김두관 경남지사가 지난달 29일 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정무부지사와 비서실장, 공석인 출자·출연기관장에 대한 내정인사를 발표하면서 한 말이다. 김 지사는 “지방정부가 새로 출발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출자·출연기관장은 재신임을 받아 다시 역할을 맡는 게 합리적”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규정보다는 단체장 의중이 앞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경남개발공사 사장, 거창대학 총장 등 경남도 산하 14개 출자·출연기관장이 좌불안석이다. 이들 기관장은 짧게는 11개월에서 2년 넘게 임기를 남겨둔 상태다. 경남도 산하 한 기관장은 “출자·출연기관장의 임기가 정관에 정해져 있고, 공모절차 등을 거쳐 임명됐는데도 지사가 바뀌었다고 해서 일괄사표를 내게 해 신임을 묻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염홍철(자유선진당) 대전시장도 산하기관 임직원 교체 의사를 강력 피력했다. 그는 “누가 봐도 정치적 인사였다거나 재임 중 정치색을 드러낸 사람은 임명해준 사람과 진퇴를 같이 하는 게 명예스러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보복인사의 신호탄’이라는 논란이 일자 그는 “전문가의 임기는 철저히 보장하겠다”고 해명했다.

기초자치단체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시 고재득 성동구청장은 2일 100명에 대한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다. 총무·주민생활지원·주택 등 8명의 과장은 한직으로 여겨지는 동장으로, 15명의 6급 팀장도 함께 동사무소로 전보 조치했다. 구청의 한 공무원은 “이번에 전보 조치된 직원들 대다수가 지난 선거 때 이호조 전 성동구청장을 지지한 인물로 보복당하는 모양새”라고 꼬집었다.

이 밖에 김선기 경기도 평택시장은 1일 취임과 동시에 총무국장과 총무과장, 인사계장 등 주요 간부 4명을 총무국에 대기 발령 조치했다. 시청 직원들 사이에선 대기발령 대상자의 경우 전 시장 재임 시 핵심 요직에 있었기 때문에 측근으로 분류된 만큼 ‘보복성 인사’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정영진 기자, 전국종합



지연·학연형

안희정 충남지사는 정무부지사와 비서실장·비서관 등 3명을 모두 자신과 같은 고향(논산) 사람들로 채웠다. 비서실장에는 조승래(42) 전 청와대 사회조정 비서관, 비서관에는 오인환 전 청와대 시민사회 행정관이 임명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충남도 산하 충남발전연구원장 후보에도 논산 출신인 이규방 건설비전포럼 공동대표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그는 참여정부 출범 당시부터 신행정수도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던 점 등이 장점으로 부각되면서 충발연 후임 원장으로 유력 검토되고 있다. 충남도 기획관실 관계자는 “후임 원장으로 이 대표가 물망에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확정된 것은 아니고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일 뿐”이라 고 말했다.

문충실 서울 동작구청장은 5일 4급·5급 30여 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감사담당관과 총무과장·자치행정과장 등 주요 보직에 호남 출신들이 중용됐다. 문 청장은 전북 군산 출신이다. 인사업무를 맡아 가장 핵심 보직으로 여겨지는 행정관리국장에는 경북 상주 출신이 임명됐지만 정년이 6개월밖에 남지 않은 인물이 배치됐다. 전임 구청장 체제에서 행정관리국장을 맡고 있던 인물은 한직으로 여겨지는 구의회 사무국장으로, 총무과장·문화공보과장은 각각 동장으로 발령이 났다. 구청의 한 공무원은 “신임 청장이 공무원 출신이어서 조직을 많이 흔들면 생기는 문제를 잘 알기 때문에 인사 폭은 크지 않았던 것 같다”며 “그러나 지역을 고려한 내 사람 채우기 인사를 했다는 평가는 피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일부 구청과 전북지역에서는 단체장과 같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온 공직자들이 요직에 기용돼 내부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북도청의 한 관계자는 “도내 산하 10여 개 기초단체에서 단체장과 같은 학교를 나온 인사들이 대거 요직에 등용돼 내부에서 비판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광역단체별로 지역 현안을 논의하고 해결하려는 지역형 위원회 신설도 문제다. 충남의 경우 17개 위원회를 만들 예정인데 결국 자기 사람을 심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태희·신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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