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코지, 대선자금 의혹 수면 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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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현지시간) 프랑스 중부 브롱마에서 열린 농업·노동계 대표 간담회에 참석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다. [브롱마 로이터=연합뉴스]

니콜라 사르코지(55) 프랑스 대통령이 불법 대선자금 수수 의혹에 휩싸였다. 2007년 대통령 선거 직전에 화장품 회사 로레알의 창업자 딸인 릴리앙 베탕쿠르(87)가 사르코지 대선 캠프에 거액의 현금을 제공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프랑스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이 정치자금 스캔들은 베탕쿠르가 24세 연하의 사진작가에게 거액의 재산을 증여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베탕쿠르의 딸이 증여가 사기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제시한 어머니와 재산관리인의 대화 녹취록에 사르코지 대통령의 금품 수수를 암시하는 부분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

◆“현금 15만 유로 제공”=2008년까지 12년 동안 베탕쿠르의 개인 회계사였던 클레르 티부는 6일(현지시간) 프랑스 인터넷뉴스 매체인 ‘메디아파르’와의 인터뷰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이 당선되기 두 달 전인 2007년 3월 현금 15만 유로(2억3000만원)를 준비했다고 주장했다. 베탕쿠르의 재산관리인인 파트리스 드매스트르가 사르코지 대통령의 측근인 에리크 뵈르트 현 노동부 장관에게 선거 자금으로 건넬 것이라며 돈을 준비시켰다는 것이다. 뵈르트 장관은 당시 대선 캠프의 자금담당이었다.

릴리앙 베탕쿠르, 프랑수아 마리 바니에(왼쪽부터)

티부는 또 사르코지 대통령이 파리 근교의 프랑스 최고 부촌인 뇌이쉬르센 시장 재직 기간(1983∼2002년) 지역 주민인 로레알 창업자 앙드레 베탕쿠르(2007년 작고)의 집에 자주 찾아가 부부와 함께 저녁식사를 한 뒤 현금이 든 봉투를 받아갔다고 주장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정치인이 앙드레로부터 봉투를 받았으며, 그 안에는 많게는 20만 유로가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중상모략보다는 실제로 중요한 일들에 관심을 가지기를 바란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야당인 사회당은 검찰의 중립적인 수사를 촉구하며 정치 공세를 펴고 있다. 집권당인 대중운동연합(UMP) 내부에서도 대통령의 충분한 해명을 요구하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

◆사진작가 증여가 발단=베탕쿠르 자금 스캔들은 그의 딸 프랑수아즈(57)가 어머니의 재산 문제에 개입하면서 불거졌다. 베탕쿠르가 유명 사진작가인 프랑수아 마리 바니에(63)에게 현금·부동산·예술품 등 10억 유로(1조5300억원) 상당의 재산을 증여하자 바니에를 사기 혐의로 고발하며 어머니와 집 재산관리인의 대화가 담긴 41시간 분량의 녹음 테이프를 경찰에 낸 것이다. 프랑수아즈는 “연로해 정신력이 약해진 어머니를 바니에가 홀려 돈을 가로챘다”고 주장하고 있다. 베탕쿠르는 최대 180억 유로의 재산을 가진 프랑스 내 3위 부자다. 집사가 몰래 녹음한 테이프에는 “바니에가 좋기는 한데, 요구하는 게 점점 많아진다”는 베탕쿠르의 말이 담겨 있다. 또 베탕쿠르가 정치 후원금과 관련해 “사르코지는?”이라고 묻자 재산관리인이 “잘 관리하고 있다”고 답변하는 대목도 들어 있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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