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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한 척하기 싫다는 아이돌‘그 누나에 그 동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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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클래식의 딱딱함을 걷어낸 리처드 용재 오닐(비올라), 수필가 피천득의 외손자인 스테판 재키브(바이올린), 부산 태생으로 뉴욕에서 화려하게 성장한 지용(피아노). 모두 흥행을 보장하는 ‘아이돌’ 연주자다. 이들이 3년 전 만든 앙상블 ‘디토’는 한국 클래식 공연장에 활달한 공기를 불어넣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어떨까? ‘디토’의 일본 데뷔는 그 시험 무대였다. 지난달 28일 도쿄 국제포럼홀 공연. 5000여 석의 다소 큰 연주회장은 공연 두 달 전 매진됐다. 그 이튿날의 오사카 심포니홀 2500석 역시 비슷한 시기에 다 팔렸다. 보조 의자와 입석이 등장했다. 공연 관계자는 “게스트 연주자의 힘이 컸다”고 귀띔했다. 일본의 스타 바이올리니스트 고토 류(22)가 합류한 덕이었다.

고토 류의 누나 미도리도 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다. 그는 “많은 사람이 제가 누나에게 많이 배웠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처음 제 연주를 들어준 건 5년 전쯤이죠. 올 5월 미국 카네기홀 공연에서 처음으로 ‘좋은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칭찬을 들었어요”라고 했다. [조용철 기자]

고토 류는 ‘바이올린 DNA’를 타고났다. 가족 모두 소문난 연주자다. 음악세례를 듬뿍 받으며 자란 것이다. 이달 초 한국에서 만난 그는 “어려서는 가족이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의 부모는 모두 바이올리니스트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 일본에서 활동했고, 아버지는 현재 줄리아드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친다. 이들 부부는 198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왔다. 고토 류보다 17살 위의 누나, 고토 미도리를 위해서였다.

미도리는 ‘세기의 신동’ 바이올리니스트로 주목 받았다. 1982년 뉴욕 필하모닉 무대에서 데뷔했고, 레이건 대통령 앞에서 크리스마스 연주를 하며 이름을 날렸다.

그 누나에 그 동생? 일곱 살에 삿포로에서 데뷔한 고토 류는 이후 런던필·필하모니아 등과 공연했고, 열일곱에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과 계약하면서 명품 연주자 대열에 올라섰다. 공부도 잘해 하버드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는 일본판 ‘엄친아’이기도 하다. “누나와 저를 길러낸 데에서도 알 수 있듯 어머니는 대단한 분이에요. 저는 어려서 하루 8시간씩 꼭 연습해야 했어요.”

그 덕분이었을까. 2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한국 데뷔 연주를 한 그는 자로 잰 듯 정확한 테크닉을 자랑했다. 또 이날 그가 연주한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는 전자음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강렬한 소리로 표현됐다. 듣는 사람의 긴장을 풀어주지 않는 연주였다. “음악은 고상하고, 저 높은 곳에 있다는 생각은 역겹다”는 신세대적 발상에 어울리는 연주였다. 새로 내놓은 앨범 ‘파가니니아나’에서도 화려한 기교가 눈에 띈다.

이런 ‘클래식 아이돌’에게도 고민이 있을까. 그는 되레 “연습만 해도 됐던 때가 더 행복했던 것 같다”고 했다. “연주자가 청중에게 과연 뭘 줘야 할까, 요즘에는 그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하다”는 이유에서다. 일종의 성장통이다. 하지만 그는 역시 생기발랄했다.

“연주회장은 레스토랑과 비슷하다고 봐요. 티켓값을 낸 청중에게 만족을 주지 않으면 불공정한 거래잖아요. 마치 돈을 받고도 음식을 주지 않는 레스토랑처럼요. 모차르트가 요즘 살았다면 클럽에 가서 신나게 놀면서 각종 희한한 음악을 만들었을 거에요.”

사실 그는 미디어의 후광을 많이 입었다. 1996년 후지TV는 ‘고토 류의 오딧세이’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의 성장 과정을 찍어 내보냈다. 그의 일상과 연습·연주를 모두 담았다. 방송은 무려 10년 동안 이어졌다. “제 데뷔 무대를 본 방송국 PD가 제안했어요. 처음에는 재미있겠다 싶어서 시작했는데, 나중엔 정말 끔찍했어요. 10년 동안 카메라가 쫓아다녔다고 상상해보세요. 그 특별한 경험이 제 음악도 독특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그는 “올해를 기점으로 한국에서의 활동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가 한국 청중과 얼마나 ‘공정한 거래’를 할지, 즉 얼마나 새로운 음악을 빚어낼지 기다려진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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