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응원열기'아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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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무려 2백78만명이 길거리 응원파티를 벌인 14일 밤은 아찔한 장면들도 많았다. 승리에 도취한 일부 시민의 과잉 행동 때문이다.

지붕에 사람들을 태우고 질주하는 자동차, 곳곳의 주먹다짐, 심지어 공무 중인 경찰관을 집단 협박하는 사건도 있었다. 다른 민족은 흉내 못낼 열정과 수준 높은 질서의식으로 세계적 명물이 된 길거리 응원의 명성을 흠집낼 일들이다.

15일 오전 2시40분쯤 충남 천안시 신부동 속칭 먹자골목 부근 도로. 전광판 응원 뒤풀이를 하던 붉은 셔츠 차림의 시민 1백50여명이 112순찰차를 둘러쌌다. 이들은 마시던 맥주를 차에 붓고 안테나를 부수더니 차체를 흔들며 뒤집으려 하다가 경찰관이 공포탄을 쏘자 해산했다.

14일 오후 10시40분쯤엔 서울 연세대 앞길에서 교통정리를 하던 서대문경찰서 소속 한영수(21)일경이 金모(42·택배업)씨가 몰던 오토바이에 치여 머리를 다쳤다. 다행히 중상은 아니었지만 金씨는 "너무 기뻐 한잔 하고 몰다가 그만…"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간 서울 신설동의 한 호프집에서는 손님 元모(39)씨 등 네명이 "한국팀이 16강에 진출했는데 왜 공짜 맥주를 안주느냐"며 주인을 폭행하는 일도 있었다.

서울 세종로에선 태극기를 든 폭주족 1백여명이 시속 80㎞가 넘는 속도로 중앙선을 넘나들었으며 일부는 역주행을 해 운전자들을 놀라게 했다.

신촌에선 사람들이 시내버스와 지하철 역 지붕에 올라가 춤을 췄다.

개인택시 운전기사 이정웅(65)씨는 "폴란드를 꺾고 첫승의 감격에 환호할 때만 해도 이렇게 엉망은 아니었다"면서 "경기가 거듭될수록 자꾸 질서가 무너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훌리건 난동보다 더 위험한 게 승리에 도취한 시민들의 무질서였다는 것이 1998년 월드컵 개최국 프랑스 경찰의 충고였다"고 걱정했다.

강주안·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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