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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도 월드컵 바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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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월드컵 열풍이 먹을거리 풍경도 바꿨다. 젊은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테이크 아웃·배달 음식이 월드컵을 계기로 주부와 중년 남성들에게까지 급속히 확산된 것이다.

경기를 단 한 순간도 놓치기 싫어 어쩔 수 없이 택한 테이크 아웃 음식이 일상생활 속에 자리잡게 됐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테이크 아웃 전문점들은 한국 경기가 없던 11~13일에도 월드컵 이전보다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이렇게 테이크 아웃·배달 음식이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테이크 아웃 음식의 종류가 다양해진 것도 주요한 원인이다. 피자나 샌드위치·샐러드·중국음식뿐 아니라 설렁탕 국물까지 손쉽게 배달이 가능한 시대, 한마디로 이미 갖춰진 인프라가 촉진제 역할을 했다.

월드컵 거리 응원전 외에 집안 응원전에도 이들 음식이 적극 활용됐다. 특히 주부들에게는 이번 월드컵이 테이크 아웃·배달 음식을 새롭게 경험하는 기회였다. 주부 김영미(37·서울 방이동)씨는 요즘 부쩍 아파트 상가의 반찬가게, 대형 수퍼마켓의 식품 코너를 이용한다.

그는 "반찬가게, 백화점·할인점·수퍼마켓의 식품 매장에서 국·찌개·샐러드·튀김 등을 사다가 식사를 해결하곤 한다"면서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해서 먹고 치우려면 4시간은 족히 걸리는 걸 생각하면 요즘같은 땐 사 먹는 게 훨씬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또 "예전엔 가끔 테이크 아웃 음식을 사다가 냄비에 담아서 직접 요리한 것처럼 내놓기도 했지만 요즘엔 월드컵 덕분에 떳떳하게 이용하고 있다"면서 "온 국민의 축제인데 주부라고 빠질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김씨의 남편 최성용(39·회사원)씨도 테이크 아웃이나 배달 음식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는다.

"어차피 밥이랑 국을 한상 가득 차려 먹으면서 응원하는 건 부담스럽죠. 아내도 고생스럽구요. 간단하게 시켜 먹으면서 가족과 함께 응원하는 게 더 효율적이죠."

김명옥(43·서울 일원동)씨도 최근 딜리버리(배달)족에 끼곤 한다.

"월드컵을 핑계로 몇번 배달을 시켜 보니 예전과 달리 질이 많이 좋아졌어요. 해물탕도 끓이기만 하면 먹을 수 있게 해주더군요."

젊은 직장 여성들을 겨냥한 샌드위치·샐러드 전문 테이크 아웃점은 이미 대도시 곳곳에 들어서 있다. 고구마 맛탕 '빠스', 서양식 붕어빵 '와플' 등 간식거리는 물론 비빔밥·프랑스 요리·궁중 음식 등 다양한 메뉴의 테이크 아웃·배달 전문점도 속속 늘어나고 있다.

현대백화점 서울 본점·무역센터점의 델리숍 '꼬메르'는 월드컵을 맞아 주부들의 이용이 늘자 최근 스프링 롤 등 20여종의 유럽식 테이크 아웃 요리를 내놓기도 했다.

월드컵 테이크 아웃족은 거리 응원전의 현장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한국 대 미국전이 벌어졌던 지난 10일 낮 서울 시청·광화문 일대의 패스트푸드점에는 '붉은 악마'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밥을 먹는 것보다 응원이 더 중요해요." 김진성(22·대학생)씨는 햄버거를 잔뜩 담은 봉투를 들고 인파 속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편의점도 대박이다.훼미리마트 광화문점에서 이날 하루 동안 팔린 삼각 김밥은 1천2백개. 평소 판매량은 1백개 정도였다. 도시락·빵도 평소의 10배가 넘게 팔렸다.

훼미리마트 관계자는 "게임을 중계하는 전광판 주변에 있는 전국 주요 지점의 경우 월드컵 개막 이후 매출이 2~3배 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가정도 거대한 응원장이어서 배달 음식이 호황이다. 치킨 체인 'BBQ'는 월드컵 개막 이후 전체 매출이 20% 이상 성장,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월드컵 열기 때문에 '집밥'을 잊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은 것이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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