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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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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6면

인류가 그린 최고(最古)의 그림인 알타미라 동굴 벽화 속 멧돼지의 다리는 여덟개다. 주린 배를 움켜쥔 채 동굴 속에 웅크리고 있던 구석기인들은 멧돼지 사냥의 꿈을 벽화로 남겼고, 달려가는 멧돼지를 묘사하기 위해 다리를 여덟개로 그렸다.

그림 속 동물이 마치 살아 움직이듯 느껴지도록 만든 것이 만화영화, 곧 애니메이션(Animation)이다. 그래서 알타미라의 멧돼지를 애니메이션의 기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본격적인 애니메이션은 20세기 영상문화의 산물이다. 대표는 뭐니뭐니 해도 미국의 '디즈니사(社)'. 월트 디즈니가 최초로 '말하는 만화영화'를 만든 것이 1928년, 총천연색 '미키 마우스'를 만든 것이 35년이다. 첫번째 장편 애니가 37년 발표된 '백설공주'며, 그 성공 덕분에 디즈니는 밀린 빚을 모두 갚았다. '백설공주'는 만화영화도 대박이 터질 수 있음을 보여준 첫 작품이다. 디즈니는 세상을 떠났지만 디즈니사는 여전히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95년 이후에는 컴퓨터그래픽 전문회사인 '픽사'와 제휴, 입체감이 살아나는 3D 애니메이션으로 21세기를 앞서가고 있다.

일본은 미국 버금가는 애니 강국이다. 데즈카 오사무(手塚治蟲)의 '아톰'(우주소년 아톰)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의기소침해 있던 일본인을 일으켜세운 힘으로 꼽힌다.

'포켓몬스터'는 세계 각국에서 수조원의 돈을 벌어들였다.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란 애니로 전세계 영화들을 물리치고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았다. '센과 치히로…'은 지난해 일본에서 개봉돼 관객 2천4백만명을 돌파했다.

미야자키 감독은 지난해 방한, "한국인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센과 치히로…' 제작에 참여한 한국 업체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이어 그는 "한국의 제작 노하우가 세계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말이 공치사가 아님을 확인해 준 작품이 안시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마리 이야기'(감독 이성강)다. 만화는 21세기 문화콘텐츠 산업의 총아며, 다행히도 우리는 이 분야에서 이미 높은 세계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알타미라의 꿈이 남 얘기만은 아니다.

오병상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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