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협상 더 꼬일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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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국 주재 한국 대사관을 통한 탈북자의 망명 신청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11일 탈북자 아홉명이 대사관 영사부에 들어감으로써 지난달 이래 우리 공관에 진입한 탈북자는 여섯차례에 걸쳐 17명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영사부는 탈북자들의 '기숙사'가 되고 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영사부 내 직원 휴게소와 물품 보관소 등을 탈북자 숙소로 활용하고, 식사는 주문해 제공한다"며 "그러나 탈북자들이 늘어나면서 수용 공간 문제로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탈북자의 수용 능력이 포화 상태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한국행을 둘러싼 한·중 간 교섭은 진전이 없다. 중국의 완강한 입장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달 말 탈북자의 신병 인도를 요구한 데 이어 최근에는 한술 더 떠 탈북자들의 망명 신청을 불허한다는 보장을 하도록 요청했다. 지난 3월 이래 다른 나라 공관에 들어간 탈북자들을 아무런 조건없이 신속하게 제3국으로 추방해온 것과 비교가 안된다.

중국의 '한국 공관 예외론'은 우리 공관이 탈북자들의 망명 루트로 정착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풀이다. 탈북자의 신병 인도 등 초강수를 두는 것은 이와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

정보 소식통은 "중국은 신병 인도와 관련, 단순히 탈북자의 신원 조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비호권(庇護權)을 행사하겠다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의 연쇄 진입도 협상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중국은 지난달 23일 처음으로 崔모(40)씨가 대사관에 들어갔을 때는 제3국 공관 진입 때와 마찬가지로 신병처리를 하겠다는 입장을 우리 측에 알려왔다. 그러나 진입 사건이 이어지자 강경 입장으로 돌아섰다.

여기에는 우리 정부에 대한 불만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北京) 외교 소식통은 "중국 측은 한국 정부가 탈북자 관련 비정부기구(NGO) 통제에 팔짱을 끼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강경 입장은 공안 당국과 군부 쪽 입김에 따른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정부는 중국의 신병 인도 요구나 망명 신청 불허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망명 신청 불허는 우리 정부의 탈북자 전원 수용 정책과 배치되는 것이다.

그런 만큼 한·중 간 줄다리기는 불가피하다. 정부는 중국과의 양자 협상에 진전이 없으면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등의 개입을 통해 문제 해결을 꾀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오영환 기자,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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