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다음은 지도자 각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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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국 축구 대표팀이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일궈낸 승리는 우리 모두의 오랜 소망이었던 16강 진출 가도를 연 48년만의 월드컵 첫승으로 한국 스포츠사에 크게 기록될 사건임에 분명하다. 더욱이 월드컵 개최국인 우리나라에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때에 우리의 젊은이들이 보여준 '환상적' 게임 운영과 불굴의 투지는 16강 진출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 사람들은 무엇이든 잘 할 수 있다는 세계인의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한층 더 높은 관심을 자아내게 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세계인 우려 불식할 好機

실제 한국인과 한국 사회에 관한 세계인의 높은 관심과 긍정적 평가는 우리의 환란(換亂) 극복과정을 통해 이미 상당히 고조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가가 처한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서 장롱 깊숙이 묻어두었던 금붙이마저 들고 나오는, 자기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한국인의 기이한 모습과 온 세계 경제, 특히 우리나라와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리던 대만·홍콩·싱가포르 경제마저 제자리걸음 내지 뒷걸음을 친 지난해에도 한국 경제는 소비자들의 지나칠 정도의 낙관적 씀씀이 위에서 상당한 수준의 성장을 이룩해낸 사실에 세계인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특히 최근 들어 세계 주요 언론 매체는 한국 경제에 관한 각종 특집을 싣고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와는 달리 환란을 겪지 않은 일본이 아직도 경제 구조조정에 실패하고 있을 뿐 아니라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어 우리 경제가 한층 더 돋보이게 되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물론 알아야 한다.

어쨌든 이러한 한국 경제에 관한 세계인의 긍정적인 평가와 높은 관심은 얼마 전에 필자가 참여했던, 파리에서 개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포럼과 런던·더블린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의 한국 경제 설명회에 참석했던 각국 정부·학계·업계·언론계 주요 인사들로부터도 잘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도 한국 노조의 강성 이미지와 대립적인 노사관계, 그리고 끊임없는 정치권의 각종 스캔들과 부정·부패사례는 한국 경제의 장래를 낙관할 수만은 없게 하는 큰 장애요인임을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우리 국민 모두의 성원으로 우리의 젊은이들이 스포츠를 통해 한국의 이미지를 크게 고양해 준데 이어 이제 정치권이 달라지고 노사가 협조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세계인의 우려를 불식할 차례다. 우리나라를 세계인이 가보고 싶고 또한 투자하고 싶은 나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 시작 전에 한국팀이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라고 한 말은 혜안을 가진 명감독답게 한국 선수 개개인의 뛰어난 기량과 불굴의 정신력을 간파한데서 나온 것일 게다. 따라서 좀 더 과학적인 방법으로 기본 체력을 보강하고 자신의 노력과 전략에 따른 게임 운영만 된다면 한국 선수들은 폭발적인 저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 국민 전체의 자질 아닌가. 이러한 우수한 자질이 백분 발휘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은 우리 사회 각계 각층 지도자의 몫이다.

경제 도약 여건 만들도록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당시 기라성같은 경제 석학들이나 미국의 원조당국마저 우리나라는 경제발전에 관한 한 전혀 희망이 없는 나라로 여겼지만 우리는 눈부신 경제적 업적을 통해 그들과 세계인을 놀라게 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현재 선진국 문턱에 다가서 있는 오늘의 우리나라를 그들은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선택은 우리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위 개발도상국에서 진정한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첫 번째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지도층이 솔선수범하고 국민 모두에게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2002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가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 달라지는 계기가 된다면 그보다 더 큰 수확이 있을 수 있겠는가.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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