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1. 샛강<62>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우리는 물이 줄어 개천이 되거나 군데군데 물웅덩이로 남아있는 샛강을 이리 저리 돌아서 양말산을 멀찍이 보며 백사장을 걸어갔다. 오른쪽에 여의도 비행장의 철조망 울타리가 따라왔다. 철조망은 드넓은 초원의 한가운데를 가르고 있었는데 잡초더미가 끝나는 곳에서부터 땅콩밭이 길게 이어졌다. 우리는 마포 강변이 보일 때까지 초원을 가로질러 갔다. 국원이가 혹시 밤에 비가 오면 물이 불어날지도 모른다며 아래로 내려가지는 않고 모래가 시작되는 풀밭 가녘에 본부 자리를 잡기로 했다. 우선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미루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기둥을 세우고 군용 판초 우비를 펼쳐서 붙들어 매니까 훌륭한 지붕이 되었다. 풀밭 위에 남은 우비를 깔고 그 위에 담요 한 장을 깔았다. 이제 네 아이가 담요 두 장을 덮고 자면 충분할 듯했다. 우리는 강변으로 내려가 헤엄도 치고 발가락으로 더듬어 조개도 잡아 올렸다. 정자가 있는 언덕 아래의 넓은 연못 쪽에는 주말마다 낚시꾼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우리도 그곳에 고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장마철이 되면 한강물이 넘쳐서 양말산 아랫녘까지 올라왔다가는 물이 줄어들면서 운동장만한 물웅덩이만 남았다. 그렇게 거듭되다 보니 그곳은 양어장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정자가 있는 언덕 아래편은 제법 깊었지만 주변은 매우 얕았다. 한참이나 걸어 들어가도 종아리에서 겨우 배에까지 올라올 정도였다.

국원이와 내가 양쪽에서 그물을 잡고 호식이.정삼이가 고기를 몰아들이기로 했다. 수초가 떠있는 부근이라든가, 자갈이 많이 깔린 곳이며, 지대가 높아서 물 아래쪽에 깊숙한 턱이 생긴 곳이 누가 보기에도 고기가 놀기 좋아할 만하게 생겼다. 우리는 수초 사이로 몸을 숙이고 천천히 걸었고 호식이.정삼이는 발로 물을 차거나 손으로 텀벙대면서 반대편 바깥쪽에서 소란을 떨었다. 적당한 때에 국원이와 내가 눈을 맞추고 나서 일시에 그물을 치켜들었다. 제법 손바닥만한 붕어가 한두 마리씩 퍼덕거리며 올라왔다. 우리는 물고기들을 양동이에 던져 넣었다. 물가에 후미진 턱이 생긴 곳에서는 고기 몰이를 하지 않고 국원이와 내가 조심스럽게 그물을 숙여 훑어내듯이 하면서 들어올리곤 했다. 역시 거기에 큰 고기들이 많았다. 메기도 걸리고 빠가사리도 걸리고.

- 야 국원아 붕어두 수염이 있냐?

- 바보야, 이건 잉어라구.

양동이를 들여다본 아이들은 서로 은근히 놀랐다. 거의 양동이의 반쯤이나 차도록 크고 작은 고기들로 버글거렸다.

- 이걸 어떻게 다 먹겠어. 그만 잡자.

- 그럼 작은 놈들은 놓아주자.

모래밭에 큰 돌을 모아다 부뚜막을 두 자리나 만들고 작은 냄비에는 쌀을 안쳤고 큰 냄비에 손질한 붕어.잉어.메기 등속과 양념을 넣었다. 그동안에 호식이가 잽싸게 부근 밭으로 가서 애호박과 풋고추 등속을 따왔고 어디서 옥수수까지 몇 자루 따왔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