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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형 지도자 뽑아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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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월드컵에서 48년만에 첫 승을 했다는 사실로 온통 나라가 축제 분위기다. 이런 결과의 뒤에는 선수들의 고된 훈련과 노력이 있었지만, 그들을 그렇게 조련한 거스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16강까지는 아직도 험난한 관문들이 남아 있다. 1승으로 모든 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업 우선순위가 관건

그러나 이런 불확실성이 히딩크 감독에 대한 국민적 기대나 관심을 약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이제는 단순히 인기의 차원을 넘어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한국대표팀을 맡은 후 지난 5백여일 동안 주변의 비판에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계획을 꾸준히, 소신 있게 밀고 나가 하나씩 실현시켜온 히딩크식 리더십을 배우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월드컵 열기가 워낙 거세다보니 13일로 임박한 지방선거가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 걱정스럽다. 축구팬들로 가득한 월드컵 경기장의 관중석에 비해 지방선거 후보들의 유세현장은 썰렁하기 그지없다. 한표가 아쉬운 정당과 후보들은 그래서 어떻게든 월드컵과 히딩크 열풍을 이용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중매체를 이용한 정당 및 후보 광고에서도 축구와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은 표현만 교묘하게 바꾼 채 단골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월드컵과 히딩크 열풍에 잠시 편승하려는 얄팍한 계산은 눈앞의 선거나 한국 정치의 앞날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선 유권자들부터 그런 정치권의 속셈을 외면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도지사나 시장 같은 선출직에 도전한 정치인들이 국민적인 월드컵 열풍과 히딩크 리더십의 본질을 공부하고 이해해서 깨끗하고 신나는 정치를 만들어 내겠다는 다짐이다.

지방선거에 나선 정치인들이 히딩크식 리더십에서 배워야 할 덕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사의 우선순위를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 히딩크는 튼튼한 내실을 다진 후에 새로운 경영전략을 접목시키는 것이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철학에서 기초체력과 '멀티플레이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혹독한 훈련을 반복하는 등 소신과 뚝심을 가지고 우선순위에 따라 선수들을 조련했다. 정치지도자가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쓸 수 있는 인재와 자금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자원배분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사업기회의 우선순위를 판정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정치지도자들은 우선순위보다 정치적 편의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다.

둘째, 인재확보에 신경을 써야 한다.과거 한국의 축구대표 선발은 로비와 연줄에 얽매였지만 이번 대표단의 경우는 히딩크 감독의 책임하에 '실력 기준'으로 뽑음으로써 감독의 권위와 리더십이 통할 수 있었다. 경영이란 궁극적으로 생산성을 추구하는 것인데 이 목적을 위해서는 다양한 관리기법을 구사하는 인재가 필요하다. 정치지도자도 지역편중인사, 낙하산인사, 위인설관 등을 떨쳐버리고 우수한 공직자를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실력만이 인정되는 사회'로 변화시켜야 한다.

셋째, 국민 중심의 투명경영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히딩크는 외국인으로서 기존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선수선발·선수기용 등 모든 면에서 투명하게 처신함으로써 리더십을 보유할 수 있었다.

미래 비전보고 판단하자

기업들은 과거의 폐쇄적 경영체제와 투명성이 결여된 경영관행으로는 더 이상 생존이 어렵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모든 정치지도자는 어떤 경우에도 전체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시해야 하며 국가경영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 경영권을 위임한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는 태도와 행동을 견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래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히딩크는 대표팀을 처음 맡을 때부터 확실하게 '월드컵 16강 진입'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정치지도자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끊임없이 혁신을 주도해 강한 국가를 만들어 가야 한다. 아무리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더라도 미래를 약속하는 비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투명한 비전을 기반으로 위기를 기회로 역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다음 주에 실시될 지방선거에서 이같은 덕목들을 고루 갖춘'히딩크형 도지사''히딩크형 군수'들이 전국에서 뽑혀 우리도 본격적인 국가경영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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