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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아르헨티나 악연史 : 전쟁같은 축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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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02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경기 가운데 최고의 빅 카드로 꼽혔던 F조의 잉글랜드-아르헨티나전에서 잉글랜드가 승리했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승리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조프 허스트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이긴 후 36년 만이다.

한국 축구선수들이 "일본에만은 질 수 없다"고 각오를 다지듯 잉글랜드나 아르헨티나는 마주칠 때마다 반드시 이기겠다고 이를 간다. 세월을 거듭한 구원(舊怨)은 유전자에 새겨져 본능이 돼 버렸다. 축구광으로 유명한 문학평론가 홍기삼(洪起三)씨는 "그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업'(業)과도 같다. 미움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라는 말로 그 본질을 짚는다. "축구는 축구일 뿐"이라는 디에고 마라도나의 말은 본심을 숨기고 있다.

흔히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악연의 시작을 1982년의 포클랜드 전쟁이나 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마라도나가 만든 '신의 손'사건에서 찾는다. 그러나 진정한 발원지는 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이다.

아르헨티나는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주장인 안토니오 라틴이 퇴장당해 10명이 싸운 끝에 0-1로 패했다. 라틴과 루이스 아르티메·호르헤 솔라리 등 아르헨티나 선수 3명만 경고를 받았다. 아르헨티나 언론은 '웸블리의 음모'라며 홈 텃세를 비난했다. 포클랜드 전쟁에서는 잉글랜드가 이겼다. 그러나 월드컵 무대에서 두 팀은 이날 경기가 있기 전까지 2승2패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2연승을 구가했다.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진정한 승부는 축구장이 아니라 가슴 속에서 이뤄진다. 이날 가장 가슴이 뜨거웠던 선수는 잉글랜드의 데이비드 베컴과 아르헨티나의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이었을 것이다.

베컴과 베론은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 포르투갈의 루이스 피구와 함께 이번 월드컵을 장식할 '4대 미드필더'로 꼽힌다. 두 선수는 맨체스터 유나이 티드에서 함께 뛰지만 사이는 좋아 보이지 않는다.

베론은 "맨체스터는 베컴의 팀"이라며 떠날 결심을 굳히고 있다. 당초 승부는 두 선수의 발끝에서 갈릴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경기 초반 두 선수의 활약은 미미했다.

대신 잉글랜드에서는 마이클 오언, 아르헨티나에서는 아리엘 오르테가 등이 눈에 띄게 활약했다. 특히 오언의 존재는 베컴-베론전의 전황을 결정했다. 오언이 얻은 페널티킥을 베컴이 골로 연결했다. 베컴은 98년 프랑스 월드컵 16강전에서 깊은 태클을 한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시메오네에게 발길질을 했다가 퇴장당했다. 그러나 이제 베컴은 감정을 주체못하는 청년이 아니었다. 임신 7개월의 아내에게 하루 열번씩 전화를 하는 가장이 돼 있었다.

능청맞기까지 했다. 수비수의 발에 차인 후 심판의 휘슬을 기대하며 발목을 움켜쥐고 뒹굴던 베컴은 오언이 파울을 얻어내자 벌떡 일어났다. GK 파블로 카바예로의 모션을 빼앗아 거의 골네트 한복판에 페널티킥을 차넣을 만큼 노련했다.

전반 내내 부진했던 베론은 결국 파블로 아이마르와 교체돼 나갔다. 오언의 활약은 베컴에게 큰 힘이 됐지만, 개인기 좋은 동료들이 볼을 컨트롤하는 동안 베론은 할 일이 없었다. 베론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 것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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