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의 정석종 전공의(신경과)가 진료할 환자의 과거 자료를 스마트폰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 병원은 시험 운영을 거쳐 오는 28일부터 이런 ‘스마트 의료서비스’를 도입한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IT와 기존 산업이 손잡는 컨버전스(융합) 서비스의 현장이다. 공공서비스나 일반 산업에 IT가 스며들어가는 이른바 ‘임베디드(Embedded) IT’다. 세브란스병원 같은 원격의료라든지 지하철 구조물의 원격체크, 대형 선박 건조의 와이브로(휴대인터넷) 활용 등에 스마트폰이 폭넓게 쓰이기 시작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선진국에 비하면 걸음마 수준이다. 10년 전부터 ‘IT 강국’ 소리를 들었지만 이를 다방면에 활용하려는 마인드는 업계나 당국 할 것 없이 뒤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
#의식과 제도가 낙후됐다
KT의 경우를 보자. 지난해 2월 서울대병원과 함께 ‘U(유비쿼터스)-헬스케어’ 전문 벤처업체를 설립하려고 투자예산까지 책정해 놨지만 결국 계획을 접었다. 현행법상 제약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의료법(34조원)에 의사와 환자 간 원격 진료를 허용하지 않는다. 의사 간에도 원격 자문만 가능하다.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소재 논란 등 때문이라는 것이다. LG전자 역시 일찍이 2004년에 혈당 측정과 투약관리가 가능한 ‘당뇨폰’을 만들어 출시했지만 금세 생산을 중단했다. 휴대전화기가 의료기기로 분류돼 의료기 판매점에서만 팔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보건산업진흥원의 이윤태 의료산업경영팀장은 “첨단 IT 기술이 발전해 전문의료행위를 보완하거나 이를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의료 관련 법들이 이런 현실을 반영해 IT기술을 접목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도적 장애가 덜한 일반 산업의 경우도 IT 활용도가 저조하긴 마찬가지다. KISDI의 김정언 IT전략그룹장은 “자동차·조선·건설·에너지 등 우리나라 주력 제조업에서 IT융합 분야에 적극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133개국의 정보통신기술(ICT) 이용환경을 종합 평가한 ‘2010년 네트워크 준비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전년보다 네 단계 떨어진 15위였다. 이동전화·인터넷 가입자와 PC 보급률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 ‘IT 인프라 강국’이란 호칭이 무색할 정도다.
#돋아나는 IT 융합의 싹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의 강기용 차장(왼쪽)이 건조1부 동료와 함께 넷북을 이용해 선박 건조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이 조선소에는 와이브로 망이 구축돼 데이터를 무선으로 주고받을 수 있다. [현대중공업 제공]
SK텔레콤은 임베디드 IT 서비스인 ‘생산성 증대 사업(IPE)’을 지난해 국내에서 시작한 뒤 올 들어 해외로 눈을 돌렸다. 지난달 인도네시아 최대 유·무선 통신사업자인 텔콤과 현지 디지털콘텐트 사업을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계약을 했다. 소비자-음원사업자-유·무선 사업자들 간 음악·게임·동영상 등 디지털 콘텐트의 유통을 위한 허브를 만드는 프로젝트다
서울 용산 전자랜드는 전국 100곳의 지점에 KT 영상회의 서비스인 ‘메가미트(Mega-Meet)’를 도입했다. 회의실을 별도로 만들지 않고 자신의 PC에서 곧바로 영상회의를 할 수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전국 26개 국립공원 관리소장들이 정기적으로 초고속 인터넷 화상회의를 한다. “지난해 말 도입한 이 시스템으로 석 달 만에 3억5200만원의 출장비를 절감하고, 이산화탄소 12t을 감축하는 효과를 거뒀다”는 설명이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향후 5년간 화상회의의 확산으로 국내에서 2조8000억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5000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와이브로(Wibro·휴대인터넷)=우리나라가 개발을 주도한 차세대(4G) 이동통신 국제표준. 기차·버스 등 시속 수백㎞ 이상의 속도로 이동 중에도 와이브로칩이 달린 휴대전화·노트북으로 웹서핑을 하고 영상 등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다.
◆유·무선 컨버전스(FMC:Fixed Mobile Convergence)=유·무선 음성통화와 데이터 서비스를 이동전화 단말기에서 동시에 쓸 수 있는 이동통신 융합 서비스.
특별취재팀=이원호(미국), 박혜민(중국·일본), 심재우(영국·프랑스)
문병주(스페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