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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음악당 아쉬운 '월드컵 서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지난 4일 한국과 폴란드의 월드컵 본선 경기가 열리던 날 대학로와 광화문·코엑스에서 벌어진 거리 응원전을 지켜보면서 서울에 많은 시민들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야외음악당이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로에선 응원행사로 교통이 마비되면서 인근 공연장의 예약 관객마저 공연 관람을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야외음악당에서 경기 직전 1시간 정도 공연을 한 다음 이어서 대형 스크린으로 월드컵 경기를 본다면 스포츠와 문화가 시너지 효과를 내는 '윈윈'게임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울엔 5만명이 넘는 관객을 수용할 만한 변변한 야외음악당이 없다. 88올림픽을 맞아 여의도 한강 시민공원에서 이벤트성 야외공연이 즐비하게 열렸을 때 LG그룹이 서울시에 헌납한 철제 야외무대 구조물은 몇년째 방치되고 있다. 잠실 올림픽공원 내 88잔디마당도 무대 구조물이 없어 공연할 때마다 번번이 가설 무대를 설치해야 한다.

지난달 30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 공원에서 열린 월드컵 개막 전야제도 한국의 야외음악회 문화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 경우다. 이날 공연에서 당초 곽승 지휘의 서울시향의 반주로 오페라 아리아와 중창을 부를 계획이었던 팝페라 가수 사피나, 바리톤 최현수·일본인 메조소프라노 미쓰구시 사토시는 80여개국에 생중계된 TV화면에 나타나지 않았다. 바이올린·바순 등 단원들이 연주할 악기가 비에 젖어 못쓰게 됐기 때문이다. 천막으로 가설 무대 지붕을 덮긴 했지만 전후좌우에서 불어닥치는 비바람을 피할 수는 없었다. 결국 단원들은 악기를 악기 케이스에 도로 넣고 연주를 거부했다.

오케스트라 공연에 앞서 직사광선과 비를 피할 수 있는 무대 지붕을 갖추는 것은 야외 공연의 기본이다. 야외음악회만큼 자유분방한 축제적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공연도 없다. 하지만 잔디밭에 가설 무대와 음향·조명시설만 보태면 야외공연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난지도와 월드컵 공원 내에 대형 주차장을 갖춘 본격적인 야외공연장을 신축하면 어떨까.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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