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13>제2부 薔薇戰爭 제4장 捲土重來 : "부인이 아니되면 며느리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따라서 아무리 장보고 대사의 강력한 배후세력이 필요하다 하여도 신라왕실의 전통을 무시하고 귀족이 아닌 천민의 계층과 혼인을 할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나으리."

김양이 극간하여 말하였다.

"나으리께오서 나이가 많으셔서 장대사의 딸을 취하기가 껄끄러우시다면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나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김우징이 묻자 김양이 대답하였다.

"나으리께오서는 아드님이 계시지 않사옵니까."

김우징에게는 경응(慶膺)이란 아들이 있었는데, 그 무렵 스무살이 넘은 청년이었다. 훗날 46대 임금이 되었던 문성왕(文聖王)이 바로 그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게 아들이 있는 것과 다른 방법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러자 김양이 말을 이었다.

"나으리께오서 장대사의 딸을 취하기 어려우시다면 차라리 아드님의 부인으로 맞으셔서 며느리로 삼으시는 편이 어떠하시겠나이까."

참으로 무서운 집념이 아닐 수 없었다. 김양의 말대로 경응에게는 이미 부인이 있었으나 나이로 보거나 신분으로 보거나 장보고의 딸을 자부(子婦)로 받아들이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었던 것이다.

김우징이 여전히 머뭇거리자 김양이 말하였다.

"나으리, 나으리께오서 장보고 대사의 딸과 결혼을 하신다면 장대사는 나으리의 장인이 될 것이나이다. 또한 나으리의 아드님께오서 장대사의 딸과 혼인을 올린다면 두 집은 혈연으로서 사돈이 될 것이나이다. 그렇게 되면 두 가문은 혈맥상통(血脈相通)이 되어 골육의 관계가 될 것이나이다. 하오니 나으리, 그림 속 용의 눈에 눈동자를 그려 넣는 것은 오직 이 방법 하나뿐이나이다. 나으리께오서 이를 허락하신다면 신이 받들어 월하노인의 역할을 하겠나이다."

월하노인(月下老人).

이는 혼인을 중매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빨간 끈(赤繩)으로 한번 매어놓으면 어떤 원수지간이라도 반드시 혼인하게 되어있다는 달빛 아래의 전설적인 노인을 가리키는 용어였던 것이다.

"나으리."

여전히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김양이 강하게 덧붙여 말하였다.

"옛 오왕 부차는 원수를 갚기 위해서 섶 위에서 잠을 자고, 쓸개를 핥음으로써 와신상담(臥薪嘗膽)하였습니다. 또한 자기 방을 드나드는 신하들에게 방문 앞에서 원수를 갚아달라는 애비의 유명을 외치게 하였습니다. 하온데 나으리께오서는 애비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섶 위에서 잠을 주무셨습니까? 또한 애비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곰의 쓸개를 핥으셨습니까? 원수를 갚아달라는 상대등 나으리의 유명을 외치도록 하셨습니까? 원수를 갚기 위해서는 오직 이 방법 하나뿐이옵는데 도대체 무엇을 망설이고 계시나이까."

김양의 간곡한 말에 김우징의 마음이 움직였다. 마침내 자신의 아들 경응과 장보고의 딸 의영과의 결혼을 허락한 것이었다.

"그러하면 나으리."

김양이 말을 하였다.

"용봉예서를 한 장 써주시옵소서."

용봉예서(龍鳳禮書).

예부터 용봉예서라 함은 혼서(婚書)를 가리키는 말로 혼인 때에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납채(納采)할 때 보내는 서간이었던 것이었다. 청혼을 허락해달라는 서장으로 홍색의 바탕에 금빛 용봉의 무늬가 있는 접지에 써서 보냈으므로 흔히 용봉예서라 불렸던 것이었다. 따라서 이 서장을 받은 집에서 이 예서를 물리치지 않으면 청혼을 받아들인다는 일종의 결혼 계약서였던 것이다.

김우징으로부터 용봉예서를 받아든 김양은 기쁨에 가득 차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이로써 용인 장보고 대사와 봉황인 나으리께오서 혈연지간을 맺으셨나이다. 이로써 용은 승천하게 되었으며, 봉황 역시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나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하였음일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