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도 "이젠 축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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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구촌의 월드컵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미국에서도 축구 중흥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 로버트 새뮤얼슨은 4일 미국의 축구 인프라를 자랑하며 "머지않아 미국은 월드컵에서 우승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때 가면 미국인들은 축구를 미국이 발명했다고 우길 것"이라고 농담까지 했다.

미국은 육상·수영 등 개인종목은 물론이고 농구·야구·아이스하키 같은 단체경기에서도 세계 패자(覇者)다.

축구 한 종목 정도는 양보해도 성취감에는 아무 이상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축구마저 중흥해야 한다니, 이 외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선 축구의 세계성이 미국인을 끌어당기고 있다. 종교를 빼놓는다면 전 세계인이 그토록 열광하는 제전(祭典)이 축구 말고 또 있을까.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결승전은 10억명이 보았다. 월드컵 기간의 64개 경기를 다 합하면 시청자 연인원은 3백30억명이나 된다. 새뮤얼슨은 "우리가 군사·경제력을 과시하고 맥도널드(햄버거)와 마돈나(팝가수)가 세계를 주름잡고 있지만 축구는 또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뉴욕 타임스는 4일 "축구가 이미 미국인을 사로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타임스가 열거한 미국의 축구 작황(作況)은 녹록지 않다. 1999년 세계 여자월드컵 우승, 남자팀 세계랭킹 13위, 남녀 프로축구 리그 운영, 6~17세 청소년 중 야구(4백70만명)보다 훨씬 많은 7백70만명의 선수….

하지만 희망을 위협하는 기록도 많다. 7년 된 남자 프로리그는 2억5천만~3억달러의 누적 적자에 시달리고 있고, 팀 수는 12개에서 최근 10개로 줄었다.

선수 양성도 미숙하다. 영국·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는 축구 꿈나무가 열두어살 때부터 발탁돼 도제(徒弟)수업에 들어가지만 미국은 성년까지 대개 아마추어로 자란다.

그래도 축구 중흥론자들은 기대에 부풀어 있다. 축구를 열렬히 즐기는 어린 세대가 자라 어른이 되면 미국도 다른 나라처럼 대통령이 월드컵 대표팀을 백악관으로 불러 격려하는 나라가 될 거라고 믿는다.

지금 그들에겐 미국팀의 경기가 미국인들이 잠자는 새벽에 열린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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