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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말레이시아>국경 넘나드는 시내버스 인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시내버스가 국경선을 넘나든다면 한국의 독자들에겐 좀 의아하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싱가포르의 시내버스 170번은 시내 곳곳의 정류소에서 손님을 태우고 국경 너머 말레이시아의 조호르바루까지 운행하는 엄연한 '국제버스'다.종점인 조호르바루 라킨 터미널까지 요금은 단돈 1.5 싱가포르달러, 우리 돈으로 1천원 정도다. 물론 국경을 넘을 때 승객들은 내려서 정식으로 출·입국 절차를 밟고 세관검사도 통과해야 한다.

싱가포르의 퀸스로드 터미널은 매일 아침 170번 버스를 타고 온 말레이시아 사람들로 붐빈다. 승객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말쑥하게 넥타이를 맨 비즈니스맨이 있는가 하면 국경을 넘나들며 돈이 될 만한 상품을 사고 파는 '보따리 장수'도 있다.

조호르바루에 사는 사람들이 매일 아침 싱가포르로 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자리가 많고 임금이 높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싱가포르의 한 정보통신 업체에서 회계 업무를 맡고 있는 20대 여성 탄 아이링은 "싱가포르에서 일하면 말레이시아보다 월급을 두 배 이상 받는다"면서 "조호르바루의 집에서 회사까지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아 불편함이 없다"고 말했다. 탄처럼 싱가포르에 고정적인 직장이 있는 사람들에겐 특별통과증이 발급돼 국경에서 번거로운 출입국 절차가 생략된다.

승객 중엔 말레이시아 학생들도 많다. 탄은 "싱가포르 대학에 진학하려면 초등학교부터 싱가포르에서 다녀야 한다"면서 "승객 중에는 자녀나 손자를 학교에 보내고 일터로 나가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오전 5시30분부터 자정까지 하루 90회를 달리는 170번 버스의 말레이시아 승객들은 탄의 말처럼 저마다 '싱가포르 드림'을 안고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주말이면 170번 버스는 쇼핑 버스로 탈바꿈한다. 잇속에 밝은 싱가포르 사람들이 물가가 싱가포르의 절반 수준인 조호르바루로 원정 쇼핑을 가는 것이다.

국경 너머 첫 정류소에서 가까운 시티스퀘어는 최신식 건물에 각종 브랜드 상품을 갖춰 가장 인기가 높은 쇼핑센터다. 길게 줄이 늘어선 1층 환전상의 종업원은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삐 돈을 헤아리고 있다. 3층 신발가게 '일레븐'의 종업원은 "평일엔 손님의 절반, 주말엔 거의 대부분 손님이 싱가포르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와 조호르바루는 1㎞ 남짓한 길이의 다리로 연결돼 있다. 국경의 의미가 사라졌다는 글로벌 시대지만 그래도 국경 이쪽과 저쪽의 삶의 모습엔 여전히 차이가 있어 보인다. 2001년 기준으로 싱가포르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8백92달러, 말레이시아는 3천3백92달러다. 인구 80만명으로 말레이시아 제2의 도시인 조호르바루는 싱가포르 옆에 있다는 이유 하나로 말레이시아에선 소득 수준이 가장 높은 도시 가운데 하나가 됐다.

조호르바루(말레이시아)=예영준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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