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파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인도에도 '새옹지마(塞翁之馬)'같은 옛 이야기가 있다.

고대 인도의 왕이 실수로 자신의 손가락을 잘랐다. 현인으로 소문난 재상이 "무슨 일이든 다 좋은 결과를 위해 일어나는 것입니다"라고 위로했다. 재상의 지나친 낙관론은 엉뚱한 비아냥으로 들렸나보다. 화가 난 왕은 곧바로 그를 해임했다. 얼마 뒤 사냥을 나갔던 왕은 길을 잃고 야만족에게 사로잡혔다. 야만족은 왕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묶다가 손가락이 하나 없음을 발견했다. 신에게 바치는 제물에 흠결이 있어서는 안된다. 덕분에 왕은 목숨을 건지고 탈출에 성공했다. 다시 중용된 재상이 말했다. "왕은 손가락이 잘려 희생을 면했고, 저는 재상에서 잘려 사냥에 동행하지 않는 바람에 목숨을 보전했습니다".

인도의 바지파이(78)총리가 가장 즐기는 대중연설의 한 대목이다. 이런 낙관주의자이기에 바지파이 총리는 적대국인 파키스탄이 핵탄두를 실어나를 수 있는 미사일 발사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날(지난달 28일)에도 느긋하게 인도양 바닷가에서 휴식을 즐겼다. 다른 나라였으면 대단한 물의가 될 법한 직무태만이지만 인도인들은 이런 총리를 비난하지 않는다.

이런 숙명론적 낙관주의는 바지파이 개인만 아니라 인도라는 '신(神)의 나라', 그리고 힌두교를 이해하는 열쇠의 하나다. 인도 현대사처럼 바지파이의 삶은 낙관적이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고행이었다. 영국 식민지 가난한 시골 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대학시절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투옥됐으며, 해방되자 정계에 투신했다. 하원 9선, 상원 재선의원이며 이번이 세번째 총리 자리다. 그의 장점은 강성 힌두교 정당(BJP)출신이면서도 다른 종교와 정파를 모두 포용, 24개 정당 연합체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론 '조국에의 헌신' '경건한 생활'을 다짐하며 독신으로 살아왔으며, 부정부패에 한번도 연루되지 않았다.

그의 정식 이름은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다. '아탈'은 '큰 산' '모자라거나 치우치지 않는 힘'을 상징한다. '비하리'는 '성인들이 설교하는 좋은 자리'란 뜻. 성(姓)'바지파이'는 전통계급(카스트)의 최상위 브라만(사제)을 나타낸다. 브라만의 자부심에 아탈의 신뢰를 지켜온 그에게 세계의 눈길이 쏠릴만도 하다.

오병상 문화부차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