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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어머니 보고파 … 두 번 간첩된 60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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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969년 7월 20일 전북 고창군 해안. 어둠을 틈타 2명의 사내가 뭍으로 올라왔다. 이들은 북한 민족보위성(현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공작원 한모(63·당시 22세)와 조모(당시 20세)였다. 한 등은 권총 2자루, 실탄 300발, 수류탄 6개, 무전기 1대, 암호문, 공작금 10만원이 든 백을 지니고 남파됐다.

이들은 고창에서 버스를 타고 김제로 이동한 뒤 24일 열차편으로 서울에 도착했다. 하지만 27일 시민 허모씨가 이들의 백 안에서 권총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과의 격투 끝에 이들은 서울 도동(후암동·남영동 일대)에서 붙잡혔다.

한은 당시 조사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 반대운동 대열에 잠입해 사회 혼란을 조장하라는 임무를 받았다고 자백했다. 그는 곧 전향한 뒤 다른 간첩의 소재를 알려줘 검거에 공을 세웠다. 이듬해 한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석방됐다.

그는 국내 대기업의 계열사에 취직하고,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국가로부터 받은 정착지원금으로 부동산 투자를 시작했다. 상당한 자산을 소유한 재력가로 변신했다.

98~2001년엔 잠시 미국으로 이민 갔다 다시 귀국했다. 겉으로 보기엔 한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의 마음 한구석엔 늘 북에 남겨둔 어머니(2007년 사망)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 잡았다고 한다. 47년 함북 무산에서 태어난 그는 18세였던 65년 공작원으로 선발돼 3년8개월간 밀봉교육을 받았다. 남파되기 직전 어머니를 잠깐 만나본 게 전부였다.

한은 그러다 90년대 중반 중국 옌볜(延邊)에서 남북 이산가족의 비밀상봉이 이뤄진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그도 고향에 남겨둔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 이런 사실이 북한보위사령부에 감지됐다. 보위사령부는 반혁명 사범을 수사하거나 탈북자를 단속하는 북한군 정보기관이다. 96년 한은 북한의 보위사령부에 포섭됐다. 어머니와 형제들을 만나는 대신 간첩행위를 하는 조건이었다. 2007년까지 네 차례 중국을 통해 북한에 밀입국했다. 가족을 만나면서 보위사령부의 간부들로부터 지령을 받았다.


그의 임무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소재 ▶탈북자 단체인 ‘탈북자동지회’의 동향 ▶국가정보원의 탈북자 합동신문센터와 탈북자 정착지원시설 ‘하나원’의 운영 현황 등을 파악하라는 것이었다. 북한 공작기관들과는 e-메일을 통해 암호 형태의 정보를 수시로 주고받으며 연락했다. 국가정보원은 한의 간첩 행각을 포착하고 오랫동안 그의 행적을 추적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2일 한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 관계자는 “한씨가 어머니 등 가족을 만나기 위해 다시 간첩 행위를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그가 최근 구속된 황장엽 전 비서 암살조와 관련이 있는지를 조사 중이다. 또 황 전 비서를 겨냥한 다른 간첩의 소재를 아는지에 대해서도 추궁하고 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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