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Start] 자카르타 고아원에 퍼진 “트리마 카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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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룩만, ‘아’하고 ‘퉤’하는 거야…. 옳지, 잘 했어.”

우경지(22·남서울대 치위생학과4)씨가 등을 토닥이자 겁먹었던 룩만(10)의 표정이 밝아졌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시 외곽에 있는 시티 카디자흐 보육원. 룩만은 이곳에서 2년째 살고 있다. 엄마는 아이를 키울 형편이 안 돼 1년에 한두 번 찾아올 뿐이다.

이곳 20여 명의 아이는 룩만과 사정이 비슷하다. 부모가 있지만 형편이 어려워 맡겨졌다. 보육원 환경은 자카르타에서도 특히 열악한 축에 속한다. 2층 철제 침대엔 녹이 심하게 슬었고, 아이들의 팔뚝에는 모기에 물린 자국이 남아 있다. 솔리힌(56) 보육원장은 “정부 보조금이 3년 전 끊겨 개인 후원금으로 버티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곳에 지난달 26일 한국봉사단 23명이 도착했다. 한국남부발전㈜ 직원, 남서울대 교수·학생으로 구성된 국내 첫 ‘산학협력봉사단’이다. 이창호 코피온 상임부회장의 아이디어에 남부발전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선뜻 나섰다. 보건복지 특성화 대학인 남서울대도 함께했다.

남서울대 치위생학과 배현숙 교수가 엄마와 함께 찾아온 한 아이에게 충치 예방을 위해 불소도포를 해주고 있다.

남부발전 직원들은 외벽 페인트칠과 전기시설 보수 공사에 땀을 흘렸다. 보육원뿐 아니라 주변의 집들도 찾았다. 건물 안에서는 물리치료학과 교수와 학생들이 주민들을 돌봤다. 무릎이 아파 찾아온 파랑(48·주부)은 “오늘 배운 자세 교정법을 열심히 따라 할 생각”이라며 “트리마 카시(고맙다)”를 연발했다. 흔한 질환은 발에 통증을 느끼는 족저근막염. 이상빈 교수는 “맨발로 다니는 사람이 많아 그렇다”며 안타까워했다.

남서울대 치위생과 교수·학생은 테이블과 플라스틱 의자를 놓고 간이 진료소를 차렸다. 아이를 안은 엄마들이 줄을 이었다. 조영식 교수는 “치과에 가본 경험도 거의 없고, 이를 닦는다는 개념이 없어 치약을 주면 맵다고 울 정도”라고 말했다. 40여 명의 아이에게 불소도포와 치아 홈 메우기를 해주고 양치질을 가르쳐주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은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준비해왔다. 아젱(14·여)은 티셔츠 만들기를 하며 시간가는 줄 몰랐다. 성초롱(20· 사회복지학과3)씨는 “처음에는 서먹하던 아이들도 박지성 얘기를 꺼내고, 만들기를 하다 보면 금세 친해진다”며 웃었다.

도착 나흘째 , 아방 보육원에선 인근의 보육원 아이들까지 100여 명이 모여 페스티벌이 열렸다. 주먹밥 만들기, 단체 줄넘기 등 다양한 놀이가 이어졌다. 봉사단은 기부금 5000달러를 전달한 뒤 작별인사를 나눴다.

자카르타, 글·사진=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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