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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먼저인가, 3무학교 먼저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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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오세훈 서울시장(왼쪽)과 얼굴에 페이스 페이팅을 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어울림생활체육대회에 참석해 웃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에서 민선 5기 지방자치가 시작됐으나 6·2 지방선거 과정에서 논란이 된 ‘무상급식’은 아직 가닥이 잡히지 않고 있다.

서울시내 초등학생 60만 명에게 무상급식을 하려면 한 해에 23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중·고등학교까지 확대하면 모두 5200억원이 든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 민주당 소속 구청장, 시의원 등은 내년 초부터 초등학교부터 무상급식을 시행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자체적으로 예산을 조달할 능력이 없다. 한 해 21조원의 예산을 가진 서울시가 나서야 한다.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상급식보다 ‘3무 학교(폭력·사교육·준비물)’에 예산을 쓰는 것이 옳다며 맞서고 있다. 서울시는 무상급식을 전면 실시하는 것에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급식비를 낼 형편이 못 되는 소득 하위 30%(차차상위계층)까지만 무상급식을 하자는 입장이다. 그 대신 3무 학교에 집중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시는 현재 결식아동 4만9000여 명에게 급식비를 지원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과 조례를 근거로 서울시교육청에 한 해 2조5000억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담배소비세·지방세의 일부로 지원하는 2조4000억원은 교육감이 필요한 사업에 쓸 수 있다. 교사 인건비로 대부분 지출되고 일부는 사업비로 쓰이기도 한다. 서울시 조례를 통해 지원하는 1000억원의 경우 학교 시설 증·개축과 같은 교육환경 개선과 학습 프로그램 지원 사업에 쓰이도록 용도가 정해져 있어 교육감이 사용처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


서울시는 4년 동안 2650억원을 추가로 지원해 사교육·학교폭력·학습준비물이 없는 학교(3무 학교)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사교육비를 줄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방과후 학교를 활성화하기 위해 학교마다 행정교사를 지원하고, 수준별 교육이 이뤄지게 하는 방안도 내놨다. 하지만 교육사업은 서울시가 단독으로 집행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교육정책을 수립할 수는 있지만 실행에 옮기려면 서울시교육청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시의회로부터는 예산 집행 승인을 받아야 한다.

곽 교육감은 1일 취임식에서 “내년부터 서울시내 초등학교에 무상급식을 전면 실시하고 점차 중·고등학교까지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교육청이 무상급식에 쓰는 돈은 1년에 560억원이다. 서울시내 초등생 60만 명의 무상급식을 위해서는 1740억원이 추가로 필요하다. 교육청 예산은 서울시의 지원금을 합쳐 한 해 6조3100억여원이다. 인건비·경상비 등 고정적으로 나가는 것을 빼면 사업비로 쓸 수 있는 돈은 1조3000억원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청이 예산 가운데 무상급식비에 더 배정하면 교육환경 개선이나 저소득층 자녀의 교육지원비 등에 갈 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곽 교육감 측은 “초등학교 무상급식에 들어가는 예산 50% 이상을 지자체(서울시·구청)가 분담하는 걸로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5명의 구청장 중 민주당 소속 21명의 구청장은 곽 교육감과 뜻을 같이한다. 이들은 선거 공약으로 무상급식 전면 실시를 내걸었다. 문제는 무상급식을 추진할 예산을 댈 만한 형편이 못 된다는 점이다. 서울시내 구청들은 한 해 평균 3200억원의 예산을 집행하지만 60% 이상은 정부나 서울시로부터 지원받는 돈으로 사용처가 고정돼 있다.

구청들은 올해 평균 66억8000만원을 교육분야에 배정했다. 초등학교 무상급식비를 구청이 자체 지원하려면 이 돈의 절반을 써야 한다. 하지만 구청장들도 무상급식비 지원을 늘리면 관내 교육환경 개선이나 원어민 영어보조교사 지원 같은 다른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구조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구청의 관계자는 “무상급식을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중·고등학교로 전면 확대할 경우 구청은 이 돈을 지원할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다수인 서울시의회도 무상급식에 찬성한다. 서울시의회는 예산을 편성할 권한은 없지만 디자인 사업, 한강 르네상스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을 깎아 교육예산에 돌리겠다는 생각이다. 민주당 박래학(광진 4) 의원은 “친환경 무상급식을 1회성이 아니라 계속 추진하도록 조례를 만들 계획”이라며 “민주당이 다수인 만큼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의회는 서울시가 짠 예산을 줄이거나 삭감할 수는 있어도 새로운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을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는 없다. 서울시의회가 조례를 개정해 교육청에 대한 교육지원예산을 증액할 수는 있지만 서울시와 협력하지 않고는 힘들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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