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배 김대현’… 팬과 약속 지키려 위험 무릅쓰고 파4서 1온 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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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금 랭킹 1위인 장타자 김대현(22·하이트·사진)은 드라이버를 꺼내 들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팬들을 위해 18번 홀에서 드라이버로 한 번에 그린을 노리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전장 375야드에 약간 내리막인 18번 홀은 평지로 치면 360야드 정도의 거리다. 그만큼 칠 수 있다고 해도 그린을 노리기는 매우 어렵다. 페어웨이는 좁고, 그린 앞에 긴 연못이 있다. 뒤로 넘어가면 OB다. 매우 정교해야 한다.

총알처럼 날아간 김대현의 티샷은 그린에 올라가지 못했다. 그린 왼쪽의 언덕에 떨어졌다. “의도한 페이드가 걸리지 않아 왼쪽으로 갔는데 거리는 비슷했다”고 김대현은 말했다. 그는 이 홀에서 버디를 잡아내고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그는 “어제도 이 홀에서 드라이버를 칠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김대현은 10언더파 3위로 경기를 끝냈다. 우승 가능성이 가장 컸던 그가 3위에 머문 이유는 3라운드 때 이 홀에서 트리플 보기를 했기 때문이다. 하이브리드로 친 티샷이 해저드에 빠지면서 문제가 시작됐고 벌타를 받고 친 샷이 그린을 넘어갔다. 트리플 보기는 우승권 선수로서는 대참사다. 웬만한 선수 같으면 스코어 카드를 제출한 후 화가 나서 집(숙소)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는 경기 후 웃는 얼굴로 줄을 선 갤러리에게 사인을 해줬다.

김대현은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사인을 회피하는 것은 멀리서 응원해 주러 오신 분들에게 할 도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골프의 빅스타들, 특히 장타를 치는 선수들은 자만해지고 팬 서비스에는 무감각한 경우가 많다. 김대현은 “세미프로인 아버지(50)로부터 ‘항상 겸손하라’는 말을 듣고, 이를 실천하려 노력한다”고 했다.

용인=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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