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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은 本能인가 동물의 짝짓기로 본'인간 이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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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생물에 대한 연구로 인간의 사회적·문화적 행동까지도 탐색할 수 있다고 주장한 사회생물학의 태두 에드워드 윌슨은 1978년 한 학술심포지엄에서 물세례를 받았다.

당시 대중들은 "인간 행위 같은 모든 것이 태고적부터 유전자에 각인된 결과물이냐"며 유전자 결정론을 신봉하는 사회생물학자들을 몰아붙였다. "지위·부·권력의 불평등 원인도 유전적으로 결정된 인간 본성으로 설명하자면 부르주아 사회 체제를 정당화하는 우파적 주장이 된다"는 반박이다.

그런데 반(反)사회생물학자인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 등에게 공격을 받았던 또 다른 사회생물학 이론가 버래시의 저작 『일부일처제의 신화』(원제 The Myth of Monogamy)는 돌세례를 맞을 만큼 불온하다. 기독교 전통이 확고한 미국 사회와, 유교 사회인 한국에서 수용하기 힘든 주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버래시는 일부일처제를 지키고 있다고 상식적으로 믿어온 백조 같은 조류들도 알고 보니 수컷·암컷 모두 '딴 짓'을 하고 있었다는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불륜(倫)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흔들고 있다.

남성의 오입과 여성의 외도는 본능이므로 여성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의 "일부일처제가 인간의 모든 혼인제도 중 가장 어려운 것"이라는 주장이 생물학적으로도 충분히 입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권투처럼 사랑과 성생활의 파트너가 1대1이어야 한다고 규칙을 정하고 경계선을 넘어가면 벌칙을 준다. 버래시의 주장에 따르자면 이런 도덕 기준은 본능을 묵살하는 강압의 수준이다.

"도덕은 법적으로 혼인하지 않은 사람들을 의심하는 것으로 이뤄졌다"는 극작가 버나드 쇼의 지적과 『안나 카레니나』 『주홍글씨』같은 일탈적 남녀관계를 그린 문학 작품, 요즘 세간의 화제인 MBC-TV의 '위기의 남자'류의 불륜 드라마는 인간 본능을 일찌감치 깨달은 셈이다.

따라서 버래시는 엄한 벌칙만 제시할 게 아니라 이 책을 읽고 동물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일부일처제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는 존경을 보내라는 주장을 편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아내인 정신과 의사 립턴과 공저 방식을 취한 것도 이 책을 흥밋거리 불륜 옹호서가 아닌, 인문서로 읽히려는 장치로 보이기 때문이다.

버래시의 연구 방법은 다양하다. 일부일처형 조류들의 새끼 중 10~40%가 혼외 수컷의 자식이었음을 DNA 지문 분석으로 밝혀냈다. 사회적 일부일처와 실제 성적인 일부일처는 합치를 보기 어렵다는 것인데, 바로 여기에 본능의 문제가 끼어든다.

예를 들어 둑방제비 수컷은 암컷의 생식 능력이 있는 동안 암컷의 뒤를 쫓으며 보호하는데, 이는 사랑이나 기사도 때문이 아니라 다른 수컷의 침입으로 인한 혼외 성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짝을 보호하거나, 번식을 더 많이 하기 위해 본인도 혼외 성교를 하고, 이미 다른 수컷과 교미한 암컷과 다시 교미를 해 자신의 정자를 더 효과적으로 밀어넣어 '최종 수컷 우세'를 누리려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혼외 성교를 하지 않고 제 안사람만 지키면 될 노릇이라고 하겠지만 본능이란 것은 난자에 비해 값싸게 다량으로 생산해낸 정자를 되도록 많은 암컷에게 주고 싶게 만든다.

암컷 또한 혼외 성교로 얻을 득이 있다. 더 우수한 자손을 얻을 확률이 높아지고 혼외 자식을 남편 수컷의 보호를 받으며 키울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묘한 것은 혼외 성교를 할 경우 암컷의 행동이 은밀하다는 것이다. 짧은꼬리원숭이 암컷은 배우자가 잠시 다른 곳에 한눈을 팔 때 나무·덤불 뒤에서 급하게 교미한다.

버래시는 화가 난 수컷의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은 육아 보조를 하지 않는 것이라며 수컷의 조력이 사라질 것을 두려워한 암컷이 이런 조심성을 발휘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버래시는 새와 곤충의 생태를 인간에게 그대로 대입하지 않는다. 그저 모든 동물 종은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라고 제시한다.

그러나 4천종이 넘는 포유동물 중에서 일부일처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 것은 박쥐 일부 종과 비단원숭이 등 10여종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시사점이 크다.

미국의 성인 여성 중 4분의 1이 혼외 관계를 가졌다는 53년 '킨지 보고서'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본능도 대다수 포유동물의 범주를 벗어나기 힘들지 않을까. 처칠이 민주주의에 대해 한 말처럼 "일부일처제는 대안을 생각할 때를 제외하면 최악의 체제"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답인 듯하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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