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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천 속에 꿈틀대는 삶의 무게…아듀, 춤꾼 전미숙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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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호 05면

중견 현대무용가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전미숙이 오랜만에 개인공연을 펼쳤다. 근래 들어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제자 양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던 차라 간간이 작품을 발표하긴 했으나 독립적인 개인공연은 오랜만이다.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을 통합한 한국공연예술센터에서 출범 첫해를 장식하는 무용가들 중의 하나로 그녀를 선택했다는 점은 그녀의 흔들림 없는 위치를 말해줄 것이다.

1~3일 아르코예술극장서 열린 현대무용공연 ‘전미숙의 울지 마세요’

1∼3일 서울 동숭동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있었던 ‘전미숙의 울지 마세요’는 두 개의 작품 ‘아듀 마이러브’와 ‘아모레 아모레미오’로 이루어졌다. 특히 ‘아듀 마이러브’는 이미 2001과 2007년에 공연된 바 있고 지난해에는 대한민국 무용대상에 출품하여 솔로&듀엣 부문 심사위원 특별상까지 받았다.

‘아듀 마이러브’는 30년 넘게 무대에 서왔던 춤꾼으로서의 경력을 마감하면서 자신의 춤추는 삶의 과거와 현재를 관조하는 작품이다. 그 속에서 50대 여성으로서의 삶의 무게감까지 은근하게 내재한다. 막이 오르자, 붉은 천이 무대에 가로질러 놓여 있다. 거추장스러운 장치 없이 한두 개의 굵직한 장치로 관객의 시각을 자극할 줄 아는 그녀의 감각이 여기에도 반영돼 있다. 붉은 천 속에 꿈틀거리며 일어선 전미숙은 그것을 무대 앞까지 끌어와 덮는다. 그러자 모든 것이 붉은 천에 의해 잠식된다. 현실을 상징하는 거대한 붉은 천은 그녀의 활동영역과 그녀의 존재 자체까지 덮어버린 것이다. 무용가로서 화려하게만 보이는 삶의 이면은 현실적 버거움으로 가득 차 있음을 현명하게 은유하고 있다.

붉은 천에서 기어 나와 이곳저곳을 휘젓던 그녀는 묵직한 탁자로 향해간다. 탁자를 끌고 세우고 뒤집다가 원래 기능을 발휘하는 모양새로 놓은 후에도 그 주위를 맴돌고 위에 드러눕는다. 그녀는 자신의 움직임을 제약하는 묵직한 탁자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니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 마치 감내해야 하는 삶의 무게감처럼.

그녀는 끊임없이 차분하지 못하다. 마치 무형의 고뇌나 갈등에 의해 쉼없이 괴롭혀지는 것 같다. 부산하게 제사상을 차리다가 순식간에 내팽개치는 모습에서 미련의 마지막 자락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마침내 그것이 인생이라는 듯, 자신의 춤꾼으로서의 제사상을 담담하게 차린다. 내면의 복잡 미묘한 심리를 함축한 이 부분은 실질적인 클라이막스였다.

이와 맞물려서, 구수하게 흘러나오는 ‘댄서의 순정’은 오색등불 아래서 춤추는 댄서의 순정을 아느냐고 토로한다. 트로트에 맞춰 생기 있고 요염하게 몸을 뒤트는 모양새는 춤추는 그녀의 현재를 반영한다. 마지막이 될 현재 말이다.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전미숙은 무대를 가득 메운 붉은 천을 무대 앞 오케스트라단으로 끌고 들어간다.

50대 중반을 향해가는 춤꾼으로서 전미숙은 전성기 때의 강한 임팩트만큼은 아닐지라도 여린 몸으로 풍기는 무대 장악력에 있어서 여전히 남다른 점을 갖고 있다. 그녀가 자기관리에 얼마만큼 신중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미숙은 여성이자 무용가인 자신의 삶의 일편을 표현하는 데 능력을 발휘해온 만큼, 직접 출연하는 작품에서 강점을 보였다. 아직 그 불꽃이 사그라지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춤꾼으로서의 경력을 마감하는 작품을 내놓았다는 점은 아쉬운 여운을 남긴다. 춤추는 무용가로서 결별을 고하면서 그 안에 삶의 무게까지 진솔하게 표현해낸
‘아듀 마이러브’는 전미숙의 또 하나의 대표작으로 남을 자격이 있다.

이제 전미숙은 교수와 안무가로서의 삶에 더욱 몰입할 것 같다. 중견 안무가로서의 지명도나 교수로서 후학 양성의 기여도는 이미 정상급이다. 특히 신창호·김판선·차진엽 등의 제자들이 우리 무용계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의 기여를 되새겨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녀는 만족할 줄 모른다. 여전히 현재진행 중인 전미숙의 행로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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