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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푸닥거리 축제의 마당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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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열대 우림의 꽃은 해마다 피지 않는다

동남아의 열대 우림에서는 5년에 한번씩 꽃이 핀다. 그동안 예비해 두었던 숲 속의 에너지를 한꺼번에 분출한다. 순간 그 밀림은 꽃을 찾아온 벌과 나비들 그리고 온갖 생물들로 거대한 축제공간으로 변한다.

월드컵 대회란 바로 열대 우림의 꽃과도 같은 것이다. 오늘 60억 세계의 모든 이목이 집중한 가운데 2002 월드컵 대회가 바로 이 한국의 땅에서 열린다. 그 장대하고 화려한 개막은 그동안 몽우리져 있던 우리의 모든 힘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꽃이라 할 것이다.

불과 5년 전에 우리는 금융위기를 맞았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 체제 아래 기업은 쓰러지고 실직자들이 거리로 넘쳐날 때 우리를 아시아의 용이라고 불렀던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등을 돌리고 떠났다. 그러나 한국인은 IMF를 "I am fired"(나는 해고되었다)가 아니라 "I am fighting"(나는 싸운다)으로 대응했다. 만약 손에 낀 반지를 빼던 그 끈질긴 생명력과 열정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지금 우리가 월드컵 대회의 잔치를 치를 수 있었겠는가.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은 올림픽 때만 해도 외국 기자들의 취재를 막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난지도의 쓰레기더미였다. 그 위에 불과 2년여 만에 마법의 성처럼 저렇게도 크고 아름다운 경기장을 세운 사람들이 누구인가. 그것은 월드컵 배너에 찍혀진 대로 '다이내믹 코리아'의 한국 특유의 폭발력이다.

백가지 의미 천가지 상징이 있다 하더라도 오늘의 이 월드컵 대회가 한국인에게 주는 첫번째 메시지는 IMF 경제상황을 딛고 거듭난 한국인의 역동성과 그 활력에 대한 평가일 것이다. 그동안 온갖 시련을 이겨낸 한국인 모두가 줄리메 컵 이상의 것을 가슴에 안은 승리자라는 사실이다. 그것을 누가 부정하고 과소 평가할 것인가.

#2.백조의 우아함은 물갈퀴에서 나온다

그러나 월드컵 대회는 "물 위에 뜬 백조만 보지 말고 그 아래 물갈퀴를 보라"는 귀중한 또 하나의 가르침을 준다. 호수 위에 우아하게 떠있는 백조의 모습은 아름답고 평화롭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물밑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는 물갈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백조의 깃만 부러워하고 그 물밑의 발에는 눈을 돌리지 않았던 것 같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것이 없다'는 한국 속담이 그것을 잘 반영하고 있다.

특히 우리는 국제행사를 치를 때마다 과시욕이 많은 민족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금 한국의 거리는 온통 배너와 구호로 뒤덮여 있고 석가탄일의 연등마저 축구 볼 모양으로 변했다.

그러나 막상 이 땅을 찾아온 월드컵 손님들은 택시를 타는 순간부터 불안감을 느껴야 한다. 외국 언론의 지적처럼 한국인의 화끈한 역동성은 아슬아슬한 총알택시가 되고 빨리빨리의 안전 불감증의 위태로운 곡예가 된다. 일본의 월드컵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일본에 온 월드컵 손님들에게는 화려한 구호보다 10개 도시의 경기장마다 '제세동기(除細動器)'를 모두 배치했다는 신기한 뉴스가 더 시선을 끈다. 우리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하게 들리지만 그것은 심장발작을 일으킨 환자를 전기 충격으로 소생시키는 첨단 의료기구다. 10만 가까운 대관중이 모여 흥분의 도가니를 이루는 축구경기장에서는 곧잘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환자가 발생한다. 그것에 대비해 일본은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큰 병원이나 미국 항공기에만 설치돼 왔던 그 의료장비를 각 경기장 안에 설치한 것이다.

일본의 경기장 부근에는 또 24시간 보안용 비디오 감시 카메라가 돌고 있으며 흥분한 응원단들이 투척할 수 없도록 블록과 자전거 같은 물건들을 치우고 있다. 철길의 자갈까지도 주울 수 없게 고착시켰다. 심지어 콜레라가 처음 일본에 들어온 것이 개화기의 구로부네(黑船·서양배)였던 것처럼 이번 월드컵은 청결도가 높은 일본에 치명적인 전염병을 퍼뜨린다는 위기론까지 대두하고 있다. 그 중에는 유행성 출혈열, 유구낭충증(有鉤囊蟲症), 그리고 개고기를 통해 감염되는 각종 질병 등 한국의 풍토성 전염병에 대해서도 상세한 대비책과 경고가 들어 있다.

"'설마'가 사람 죽인다"라는 한국의 '설마 문화'속에서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붕괴했던 것을 세계가 다 알고 있다. 바로 이 안전 불감지대로 30여개국이 넘는 수십만 응원단과 관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그러므로 이번 월드컵 대회는 한국인의 안전의식과 그 수준을 평가받는 시험대가 될 것이 분명하다. 동시에 한국인이 '설마' 문화를 깨끗이 씻고 세계에서 가장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안전한 나라, 편안한 사회를 만드는 기회이기도 한 것이다.

#3.이제 한국은 주변국가가 아니다

월드컵 대회가 주는 세번째 메시지는 한국은 이미 주변국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중화의 변방' '대동아의 변방'에서 벗어난 뒤에도 한국은 여전히 '서양의 변방'이었다. 급성장하는 산업국으로서 한국 제품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기는 했어도 그것은 '물건만 나오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 자판기문화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월드컵 대회는 제품 전시장과는 다른 것이다. 피와 살이 있는 사람들끼리 직접 부딪히는 스포츠다. 공장 기계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영혼과 생명이 담긴 문화의 제전이다. 종교와 이념과 문화가 달라도 11명의 선수들이 연출해 내는 축구는 인류가 함께 이해하고 공감하는 원초적인 춤이며 움직이는 조각이며 즉흥적으로 연주되는 음악이다. 지금까지 그것은 서구를 상징하는 스포츠였다. 그것이 한국과 일본을 양축으로 한 태평양으로 옮겨오면서 2002 월드컵은 21세기 새 문명의 월드컵이 되었다. 서양사람들이 2백년 동안 닦아서 이룩한 산업주의 문명을 불과 20년 동안에 뛰어넘은 한국, 그리고 이제는 브로드 밴드의 인터넷 인구가 1천만명을 넘어선 세계 최고의 정보대국이 된 한국이 세계를 향해 그 문명-문화를 발신하는 월드컵이 된 것이다.

그렇다. 세계가 이리로 오고 있다. 그들이 들어오고 있는 인천공항은 이미 변두리의 시골 역이 아니다. 오를리 공항보다 장대하고 나리타 공항보다 첨단적이다. 세계 중심부로 들어오는 대문으로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열등의식에서 오는 자기 존대, 변두리 사람들 특유의 배타 감정과 소아병적인 국수주의를 버릴 때가 되었다. 우리가 세계의 중심부에 선다는 것은 그만큼 어른으로 성숙해졌다는 것이며 세계의 한복판에서 세계 전체를 내다볼 수 있는 넓고 높은 안목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축구볼은 둥글다. 그래서 온 세상 사람들이 어느 지점에 살든 그곳이 중심이 되는 세기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만이 지구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축 위에서 모든 인류가 살게 되는 세계를 2002년 월드컵의 상징이요, 약속으로 삼아야 한다.

#4.해원상생의 푸는 문화

네번째의 메시지는 2002 월드컵은 한국의 기층문화인 해원상생(解寃相生)의 문화라는 점이다. 21세기는 9·11의 충격적인 테러로 시작하여 신(新) 전쟁이라는 아프간 전쟁으로 불붙었다. 하지만 21세기의 새벽에 서 있는 인류는 또 하나의 다른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월드컵의 볼은 자폭테러의 폭탄이 아니며 멋지고 통쾌한 롱 슛은 미사일이 아니다. 축구경기에도 저지가 있고 반칙이 있지만 옐로카드와 심판자의 휘슬이 있다. 근본적으로 게임은 전쟁이 아니라 오히려 그 억압된 것을 발산하고 응어리진 것을 푸는 해원 상생의 푸닥거리다.

한국의 무속은 억울한 사람들의 원혼을 풀어주는 데 있다. 푸닥거리는 푸는 거리다. 이렇게 풀어야만 인류의 문화는 상극에서 상생으로 그 방향을 돌릴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몸을 풀고 마음을 풀고 한을 풀고 서로 손을 잡는다. 심심한 것까지 풀어 심심풀이란 말을 만들어낸 민족이다. 그 심심풀이가 양식화된 것이 바로 축구가 아니겠는가. 월드컵의 공인구가 육각형의 백색과 오각형의 흑색으로 된 가죽 쪼가리들을 합쳐 만든 것이듯 서로 다른 빛깔의 문화와 서로 다른 인종들이 둥근 지구의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 축구가 아니겠는가.

서양에서는 세 자매라고 불리는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가 지금까지 반목과 갈등의 역사를 되풀이해 왔지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문화는 유불선 삼교가 함께 상생하면서 천년을 어깨동무하며 살아 왔다. 원수와 다름없는 한국과 일본이 테러가 아니라 이렇게 공동으로 월드컵을 치른다는 것은 해원 상생의 '풀이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동으로 월드컵을 개최하는 날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해낸 것이다.

#5.즐거움은 인생과 세계를 바꾼다

마지막 메시지는 축구를 축구로서 즐기자는 메시지다. 우리는 그동안 노동에 대한 훈련과 교육은 받았지만 삶을 즐기는 방법에 대해서는 무엇 하나 배운 것이 없다. 그래서 스포츠도 한자 말로 번역하면 체육으로 체조 교육의 뜻이 되고 만다. 그러나 21세기는 교육도 놀이로 하는 에듀테인먼트의 시대다. 월드컵의 경제적 효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더한 것은 즐거움이라는 가치체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경제는 삶의 수단이지 결코 목적이 아니다. 의식주가 족하지 않았던 시대에서는 언제나 금강산의 식후경 논리가 앞섰다. 모든 화두는 "그것이 밥 먹여 주느냐"라는 반문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1세기의 가치 패러다임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에서 매력으로 바뀌어가고 있으며 박물관과 유원지가 하나로 융합하고 있다. 어메니티의 지수가 기능보다 앞선다. 우리 역시 주 5일제 근무로 놀이가 노동 이상으로 중시되는 시대를 맞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항상 놀이는 소모적이고 파괴적이고 때로는 죄악시해 왔다.

그러나 공자님도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知之者 如好之者 好之者 如 之者)"고 가르치셨다.라틴 말로 문명을 가리키는 시비리투스도 사람답게 산다는 의미라고 한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고통 속에서 살아 왔다.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에게 준 것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이었다. 월드컵의 최종적인 성공은 온 국민이 삶은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이요, 행복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체험하는 데 있다.

가자. 지금 저기에서 월드컵 대회의 함성이 들려온다. 푸른 잔디 위에서 차고 받고 달리는 그 젊음의 몸짓 속에서 폭발하는 한국의 역동적 문화가 있다. 호수의 중심부에 떠 있는 우아한 백조의 모습과 해원 상생의 푸닥거리 춤과 핏발 선 눈이 아니라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삶을 노래하는 그 축제의 마당으로 모두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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