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와 선거의 공통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6월에는 두 가지 큰 국가적 행사가 예정돼 있다. 하나는 지방선거이고, 다른 하나는 월드컵이다. 그런데 월드컵을 보는 국민의 마음은 한껏 고무돼 있으나 지방선거를 보는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우리 축구팀의 실력이 급성장해 월드컵 개최국의 자존심을 한껏 높여주고 있는데 반해 지방선거는 레이스 초반부터 온갖 불법이 자행돼 전 세계를 향해 정치적 후진성을 백일하에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엊그제의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각종 부정선거 운동으로 적발되거나 구속된 사례는 1998년 선거와 비교해 일곱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온갖 흑색선전이 난무해 극심한 혼란상이 초래되고 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정보사회의 총아로 발전한 인터넷이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과 부정적 메시지를 대량 유포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가. 대체로 세 가지의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지방선거에 참여하는 각 후보들이 차별성 있는 정책대안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방자치의 주요 사안에 대해 평소 깊이있는 연구를 통해 대안을 모색해야 하나 대부분의 후보들은 이런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선거에 임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 결과 정책대결보다는 상대방을 흠집내는 네거티브 캠페인이나 각종 연고를 동원하는 후진적 선거운동에 치중하게 된다.

둘째, 선거에 당면해 많은 후보들은 자신들의 낮은 인지도 문제로 고민하게 된다. 공직 선거에 뜻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평상시에 지역사회를 위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전개해 자신의 인지도를 높여야 하지만 실제로 많은 후보들은 선거에 임박해서야 출마를 결심한다. 이 경우 상대방과의 인지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상대를 깎아내리거나 금품을 살포하는 등의 불법적 행동을 자행하게 된다.

셋째, 이번 지방선거는 12월 대통령선거의 전초전으로서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지방선거는 지방의 일꾼을 선출한다는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 국가권력 쟁취를 둘러싼 대선 전략에 강하게 영향을 받게 된다. 그 결과 승리지역을 극대화하려는 중앙당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해 지방선거에서 각종 탈법 현상이 간접적으로 조장되는 측면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선거 초반의 상황은 과열돼 있고 혼탁하다. 참으로 우려스럽다. 월드컵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할 50만명의 외국인들과 TV로 경기를 시청할 20억의 세계인들은 축구와 함께 한국의 지방선거에서 벌어지는 온갖 부조리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한국을 전쟁·빈곤·외환위기를 이겨낸 불사조와 같은 나라로 알고 있고, 또 민주화에도 성공한 모범적인 나라로 알고 있는데 불법이 판치는 지방선거를 보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앞선다.

내부적으로 볼 때 이번 지방선거는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가져올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87년의 민주화 이후 네번째로 실시되는 올해의 지방선거가 온갖 불법으로 얼룩지고 있어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는커녕 민주주의의 풀뿌리 자체를 약화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민주주의의 공고화기에 접어든 이번 지방선거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위험성이다.

축구와 선거의 공통점은 룰을 지키는 가운데 승리를 향해 경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축구의 세계 축제를 유치한 한국에서 탈법적 선거운동이 자행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룰을 지키는 페어 플레이 정신이야말로 지방선거의 키워드가 돼야 한다. 한국의 축구와 지방선거에서 세계인들은 한국이 얼마나 룰을 잘 지키면서 승리를 향해 노력하는가를 지켜볼 것이다. 그들은 그것이 선진국의 지표임을 잘 알고 있다. 우리 한국민도 그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길임을 잘 인식하고 있다. 이제 정치 선진화를 위해 한국의 후보자들과 유권자들이 결단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