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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경제] 금거래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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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금은 용도가 참으로 가지가지입니다. 올림픽 때 1등한 선수에게 주는 금메달도 금으로 만듭니다. 전자제품을 만들 때, 썩은 이를 치료할 때도 쓰입니다. 이런 금은 덩어리로 거래된답니다. 그 덩어리 금을 흔히 ‘금지금(金地金)’이나 ‘금괴’라고 부릅니다. 가공업체는 이런 금을 사다 귀걸이도 만들고 반지도 만드는 것이지요. 마치 밀가루를 사다 도넛이나 빵을 만드는 것과 비슷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금을 나라 밖에서 ‘몰래’ 들여오면 큰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해외 금값이 우리나라 금값보다 쌌기 때문이지요. 왜 쌌을까요. 해외에서 금을 들여오려면 관세나 부가가치세라는 걸 물어야 합니다. 세금이 붙는 거죠. 이 세금을 빼먹으면 그만큼 이익입니다. 그건 범죄행위라서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을 밀수범이라 부릅니다.

아무튼 우리나라에는 금을 캐내는 광산이 한두 군데밖에 없습니다. 고작 한 해에 160㎏ 정도 캐낸다니 금이란 게 정말 귀한 금속입니다. 이렇게 적게 캐내는데 한 해 우리나라에서 쓰는 금은 120~150t입니다. 대부분의 금을 해외에서 들여와야 한다는 얘기죠.

#우리나라 금 보유량 줄어

그런데 지난해 이상한 일이 벌어졌답니다. 우리나라가 버젓이 금 수출국이 된 겁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한 금은 91t(27억5687만 달러), 수입한 금은 이것의 3분의 1 조금 넘는 37t(11억1495만 달러)이었습니다. 46t(16억5894만 달러)이나 되는 금이 빠져나간 셈입니다.

10년 전쯤, 그러니까 외환위기 후 장롱 속 금을 모아 수출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금이 빠져나간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금은 미미한데 금을 수출하는 나라, 즉 금 무역 흑자국이 됐을까요? 이 미스터리를 풀어봅시다.

#위기 때는 금값 올라

우선 금 무역 흑자의 비결은 국제시세보다 싼 국내가격입니다. 국내 금값이 국제가격보다 늘 비쌌다고 했는데 왜 최근 가격이 역전됐을까요? 바로 글로벌 위기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입니다. 국제 금값이 갑자기 껑충껑충 뛰기 시작한 것이죠. 국제 금값이 오른다는 건 해외의 누군가가 금을 마구 사들이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금은 가치를 보존하는 수단입니다. 종이돈은 휴지 조각이 되기도 합니다. 20세기 초반 독일에서는 정부가 돈을 너무 많이 찍어대는 바람에 돈값이 마구 떨어져 종이돈이 휴지나 다름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종이돈을 불쏘시개로 썼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아픈 기억이 있는 만큼 사람들은 경제위기가 닥치거나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상황이 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가치를 인정받는 걸 찾아 나섭니다. 그게 금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국제 금값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금값은 그걸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금값이 비싸지자 장신구를 사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보관하고 있던 금붙이를 팔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우리나라가 다른 선진국보다 경제가 빨리 회복되는 바람에 금에 돈을 묻어두려는 사람도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금값이 국제 금값보다 싼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금 거래소 만들어 금 시장 선진화 시동

우리나라에서 금은 주로 뒷골목에서 거래됐습니다. 금 거래량의 60~70%가 밀수한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금 거래소를 만들어 이런 뒷골목 거래를 막아보려고 하고 있죠. 우리나라에 금 거래소가 있다면 금 수출이 그렇게 많이 이뤄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국제 금값과 국내 금값의 차이가 좁혀져 수출해도 남는 게 없게 될 테니까요. 거래가 활발해지면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러면 가격은 하나로 통일되게 마련이지요.

한꺼번에 많은 금을 파는 것도 가능해지겠지요. 금 거래소가 생기면 모든 거래 과정이 기록되므로 암시장이라는 것도 점차 사라질 것입니다.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거래 사실을 숨기면서 뒤로 거래하는 금, 이른바 ‘뒷금’이 급격히 줄어들 것입니다. 이것이 정부가 혜택을 주면서 거래소를 만드는 이유입니다.

정부는 2012년 1월부터 한국거래소(KRX)에 금 현물시장을 만들겠다고 지난달 23일 발표했습니다. 금 거래소가 만들어지면 현재 공급자(수입상·제련업자 등)에서 소비자까지 3~4단계(도매상-중간상-보석상-소비자)를 거치는 금 유통구조가 ‘공급자-거래소-소비자’로 단순해집니다.

금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금지금의 규격은 1㎏과 100g, 50g 등입니다. 틴틴 여러분이 50g짜리 금을 사고 싶다면 이 거래소에 등록을 한 업체(거래소 회원)에 부탁하면 됩니다. 그 금은 증권예탁원의 금고에 보관돼 있습니다. 그걸 다시 팔 수도 있습니다. 금고에 맡겨두고 사고팔 때는 세금(부가가치세와 거래세)을 내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 금을 찾아서 집에 갖다 놓고 싶다면 부가가치세를 내고 찾아야 합니다.

팔고 싶은 사람은 반대로 팔아달라고 하면 되겠지요. 금 거래소는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최하 거래 단위를 50g으로 했습니다. 금을 찾을 때는 100g은 돼야 한다는 제한이 있긴 합니다.

해외 금 거래소로는 중국 상하이황금거래소(SGE), 영국 런던금시장협회(LBMA) 등이 유명합니다. 우리나라의 금 거래소가 그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래소가 될 수 있을지 틴틴 여러분도 지켜보시길 바랍니다.

허귀식 기자



알쏭달쏭 금 용어

☞◆트로이 온스=금이나 백금의 무게를 재는 단위입니다. 1트로이 온스(Troy Ounce)는 약 31.1g이며, 1온스는 약 28.3g입니다.

☞◆홀마크(Hallmark)=귀금속의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귀금속의 성분을 분석한 뒤 최소 순도 이상의 품질을 갖췄다는 뜻으로 새겨놓은 표식입니다.

☞◆금지금=순도 99.5% 이상의 금괴와 골드바 등 원재료 상태의 금. ‘지금(地金)’은 ‘Bullion’을 번역한 일본식 표현입니다.

☞◆면세금·고금=면세금은 일정 요건을 갖춘 금지금 도매업자 등이 면세 추천을 받아 부가가치세 없이 세공업자에게 공급하는 금입니다. 일반 사람들이 소장용으로 가지고 있던 금이 시중에 판매돼 귀금속 원재료 등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고금(분석금)이라고 합니다.

☞◆폭탄금=고금과 밀수금을 세금계산서 없이 무자료로 구입하되 팔 때는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부가세를 징수한 후 이를 세무서에 납부하지 않고 폐업하는 방식으로 거래되는 금입니다.

☞◆금 증서=금과 교환할 수 있는 증서입니다. 금 증서를 발행하는 기관(주로 은행)은 증서 보유자를 대신해 금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증서 보유자들은 도둑 맞을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LBMA=런던금시장협회(London Bullion Market Association). 1987년 귀금속도매시장의 공동이익을 위해 결정됐습니다. 세계 최대의 금 현물시장입니다. 일반인의 참여가 어려운 장외시장(OTC)이다. 여기서 결정되는 가격(Fix)은 세계 금 가격의 기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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