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임성남 국립발레단 이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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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국립발레단 이사장 겸 예술원 회원인 임성남(聖男·본명 임영규)씨가 지난 25일 대장암으로 별세했다. 73세.

고인은 한국 발레의 선구자다. 국립무용단과 국립발레단의 초대 단장을 지낸 그의 경력이 이를 입증한다. 1962년 창단 당시 국립무용단은 한국무용과 발레를 겸했었다. 74년 국립발레단이 국립무용단에서 독립된 뒤에도 늘 그는 한국 발레의 중심에 서있었다.

씨는 천생 예술가였다.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국립발레단 김긍수 단장(예술감독)은 "예술가는 예술가로 남아야 한다는 게 선생의 지론이었다. 평생 이를 관철하며 살다보니 삶은 고독했다"며 애도했다.

현장을 떠나 아카데미즘에 경도되는 것을 지독히 싫어한 그가 제자들의 대학 진학을 극구 만류한 일화는 무용계에서 유명하다. 그 자신도 숱한 대학 교수직 제의를 마다했다.

1929년 서울에서 태어나 전주사범을 졸업한 그는 원래 음악가를 꿈꿨다. 그런 그의 진로를 바꾸게 한 것은 프랑스 영화 '백조의 호수'였다.

씨는 지난해 6월 열린 국립발레단 1백회 정기공연 '백조의 호수'의 팸플릿에 기고한 글에서 "그 영화는 발레를 배우는 어린 소녀의 이야기였는데, 열다섯살인 내게는 하도 신기해서 '나도 저것을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45년부터 발레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도 편견이 없지는 않으나 당시엔 남자가 춤을 춘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는 위의 글에서 "57년 일본에서의 활동을 마치고 귀국해 국내 처음으로 '백조의 호수 2막'을 선보였는데, 타이즈를 입고 무대에 선 내 모습이 낯설었던지 여성 관객들이 킬킬대며 웃었다"고 회고했다.

무용수와 안무가로서 씨의 전성기는 60~70년대였다. 국립발레단장으로 74년 클래식 발레의 걸작 '지젤'을 국내 처음으로 전막 공연하고 명성을 날렸다. 당시 그의 전문적 상대역이었던 한국예술종합학교 김혜식 무용원장은 "키가 1백72㎝인 선생의 아름다운 자태는 일본이나 서구 무용계에서도 드물 정도로 매력이 넘쳤다"며 "때문에 '백조의 호수'의 지그프리트 왕자같은 역이 제격이었고 표현력도 뛰어났다"고 말했다.

고인은 서양 유명 발레를 소개하는 것 못지않게 발레를 창작하는 데 열성을 보였다. 이미 60년대 초 전자음악을 활용한 '화씨(℉) 2천4백도'를 선보이는 등 창작 발레 여섯편을 남겼다. 한국무용협회 이사장과 한국발레협회장 등을 역임했고, 보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행옥씨와 1남3녀가 있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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