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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 생각은…

씨름계 위기는 운영 잘못서 비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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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우리나라 민속씨름이 프로화한 것이 1983년이라니 벌써 20년이 넘었다. 초창기의 인기를 되새겨보면 지금의 현실이 너무나 초라하고 안타깝다. 천하장사를 지낸 한 선수가 씨름판을 떠나 인기있는 종목으로 전환한다고 하니 씨름계에서는 그를 씨름판에서 영원히 추방한다고 한다. 너무나 유치한 발상이다. 지난 18일자에 씨름연맹 전 사무총장의 글이 실렸다. 오늘의 씨름 현실을 초래한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을 잘 지적한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운 것은 씨름계 대부분의 인사는 현 상황의 요인을 주로 외부 요인(정부와 기업의 무관심)에서 찾으려는 것 같다는 점이다. 하나의 기업이 망하면서 망하는 원인을 경제상황 탓으로 돌린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도 동정은 하겠지만 그렇다고 모두 공감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이 그 기업을 살리려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필자는 약 5년 전쯤 우리 민속씨름이 '관전용'격투기 종목으로서 '뛰어난 상품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당시의 운영체계에서 벗어나 마케팅 개념을 도입해 시장에 보다 멋지게 내놓을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연맹에 제시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불과 서너 개의 씨름단이 있었고, KBS의 독점 중계료만이 씨름연맹 수입의 전부였으며, 변화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간간이 제기되고 있었다. 그러나 연맹은 현실에 안주했고 몇몇 사람이 개인적인 관심만 보였을 뿐 변화하려는 노력은 없었고, 씨름단을 창단해줄 기업을 찾는 데만 관심을 기울였다(아마도 정치인이 임명되는 연맹의 총재는 그런 일을 총재로서의 주된 역할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문제는 오늘의 상황에서도 연맹은 씨름단을 만들어 줄 새로운 기업을 찾는 데만 열중인 것 같다는 점이다. 아마도 연맹에서는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들이 다른 종목(축구.야구.농구 등)에 훨씬 더 많은 돈을 쓰면서 비용이 그보다 적게 드는 씨름단을 만드는 것을 왜 주저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저 민속씨름의 발전을 위해서라는 명분만 갖고 기업에 호소하며 기업을 설득하는 총재의 로비 능력에 사활을 걸고 있다. 본질적으로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씨름이 대중으로부터 관심을 잃고 있는데 어느 기업이 수십억원의 돈을 들여 씨름단을 만들 것인가. 기업이 자신의 입장에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즉 씨름단을 만들어 투자되는 비용보다 높은 반대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굳이 로비하지 않아도 씨름에 투자할 기업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씨름계는 정부와 기업의 무관심을 말하기 전에 민속씨름의 운영을 현재처럼 매력 없는 상태로 둔 채 씨름단을 만들어 줄 기업을 찾기보다 기업이 먼저 군침을 흘릴 정도로 씨름을 매력 있는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 씨름 관계자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오늘의 문제는'씨름'자체가 흥미 없는 상품이어서가 아니라 운영체계의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홍석윤 서울 서초구 반포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