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시대 '독일 피난민'도 세계는 기억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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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1959년에 장편소설 『양철북』을 발표한 이래 꾸준히 나치 치하 독일인들의 죄책의 문제를 다루어 온 독일의 노벨상 수상작가 귄터 그라스(사진)가 국제심포지엄 '통일과 문화'(29~30일·중앙대)에서 '독일통일에 대한 성찰'이란 제목으로 초청강연을 하기 위해 26일 내한한다. 귄터 그라스는 김지하와 같은 시인이 감옥에 갇혀 있는 한 한국을 방문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격세지감이 있는 게 그의 방한이다.

그의 방문과 때를 같이 해 최근작 『게 걸음으로 가다』가 번역 출간됐다. 이는 그라스의 사유의 폭과 깊이, 그리고 변화까지 엿볼 수 있게 해 그의 방한만큼이나 뜻깊은 일이다.

이 작품의 주제를 요약하자면, 독일 과거극복의 최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독일 피난민 문제다. 말하자면 전쟁을 일으킨 가해자들인 독일인들 쪽에서도 희생자들이 있었고, 그들이 당한 고통도 독일인들과 세계인들에게 기억돼야 마땅하다는 담론이다. 이런 논의는 나치의 범죄행위가 이런 일로 인해 결코 상대화될 수 없다는 대전제 때문에 독일 좌파에게는 금기사항이 되어 왔다.

그런데 독일 좌파 지식인의 수장 그라스가 이번에 조심스럽게나마 이 문제를 건드린 것이다. 이 작품의 핵심적 사건은 45년 1월 30일 나치독일의 민간유람선 빌헬름 구스틀로프호가 발트해에서 소련군 잠수함의 어뢰에 맞아 침몰한 사건이다. 밀려들어 오는 소련군을 피해 서쪽으로 피난하려던 9천여명의 동프로이센 피난민 승객들 중 발트해의 찬 물과 바람을 견디고 살아 남은 극소수의 사람들 중에는 『고양이와 생쥐』 등 그라스의 초기 작품들에서 말괄량이 소녀 역할을 해오던 툴라 포크리프케도 끼어 있었다.

당시 17세로서 만삭의 몸이었던 그녀는 바로 그날 구명보트 위에서 아들을 출산하게 된다는 것이다.말하자면 이 작품은 그 동안 할머니가 된 툴라와, 그때 태어나 지금은 신문기자가 된 아들 파울, 그리고 김나지움 학생인 손자 콘라트 등 3대의 이야기로서, 툴라는 아들과 손자에게 틈난 나면 그때의 그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사람들을 가득 태운 작은 구명 보트들과 뗏목들이 파도에 의해 쳐들어 올려졌다가는 삼켜졌으며 도처에서 비명들의 뭉치 뭉치가 수면 위로 떠올라왔다.…'야 아야, 그런 비명 소리는 사람의 귀로는 두 번 다시 들을 수 없을끼데이…'."

그 때문에 그녀는 할머니가 된 지금에도 아들 파울 포크리프케에게 이 일을 글로 써서 세상에 알리기를 원한다. 이렇게 말이다.

"'무엇 때문에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하고 누군가가 말했다. 실은 어머니가 내게 자꾸만 말씀하시기 때문이기도 하고, 바다 위에 비명 소리가 처절하던 그 당시에 내가 외치고 싶었지만, 외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소설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는 서술자 파울 포크리프케는 당년 57세의 평범한 기자로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스위스 주재 나치 조직책 빌헬름 구스틀로프의 생애와 나치에 의한 그의 사후 우상화 과정을 조사하게 되었고, 36년에 스위스의 휴양지 다보스에서 권총으로 구스틀로프를 암살했던 유대인 대학생 프랑크푸르터의 행적도 아울러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민간인이 많이 타고 있는 배를 어뢰로 격침시킨 소련 잠수함장 마리네스코의 행적도 추적해 보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배운 대로 우선 한 가지를 말하고 다음에 다른 것을 말하고 그 다음에 이런 저런 인생행로들을 술술 풀어내야 좋을 것인지, 아니면 시간을 비스듬히 잘라서 그 사면(斜面)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 것인지…후자의 방법은 말하자면 게들의 수법인데, 그것들은 옆으로 벗어나면서 뒤로 빠지는 척하지만 실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파울 포크리프케는 말하자면 게걸음을 택하여, 시간을 자유로 넘나들며 여러 유형의 인물들을 그려내고 있는데, 그 핵심 주제는 언제나 독일 현대사에서 반복해 나타나는 폭력의 문제다. 이를테면 유대인 의과대학생 프랑크푸르터는 나치 지도자 구스틀로프를 권총으로 사살하는데, 그는 그 이유로서 "나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총을 쏘았습니다. 나는 내가 한 행위를 완전히 의식하고 있고, 내 행동을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고 진술을 한다.

나중에 극우파 청소년 콘라트 포크리프케가 동년배의 학생을 쏘아 죽이고 나서도, "나는 독일인이기 때문에 쏘았습니다. 그리고 다비드가 영원한 유대인을 대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도 나치에서 네오나치로 넘어오는 동안 폭력의 유형과 행태 자체는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반증에 지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정확한 자료 발굴, 여러 서술차원을 넘나드는 생생한 작품 구성, 환상과 현실을 뒤섞는 교묘한 언어의 유희 등 모든 기법 면에서도 노벨상수상작가 그라스의 이름에 손색이 없는 주요 작품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안삼환<서울대 교수·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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