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씨름하는 '입담장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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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9면

모래 바닥의 천하장사가 잠시 외도를 하는 것으로 간주했던 사람들은 이제 생각을 바꾸어야 할 시점에 이른 듯하다. 멀리서 보면 달콤한 체리동산이지만 막상 발을 디뎌보면 바닥에 독이 흐르는 험준한 연예거리에서 십년 째 꾸준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강호동은 마산중학교 1학년 때 씨름을 처음 시작했고 마산상고를 졸업하던 1989년에 프로로 입문했다. 이만기 선수가 같은 중학, 고교 7년 선배다. 프로 데뷔하던 바로 그 해 7월 그의 우상이자 목표였던 이만기 장사를 2대0으로 이기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후 은퇴를 발표하던 92년 4월까지 3년 반 동안 천하장사 5번, 백두장사 7번을 거머쥐는 화려한 시절을 보낸다.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대학 입학이 좌절되고 우울하게 지내던 93년 4월 개그맨 이경규씨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자신이 진행하는 '코미디 동서남북'의 '오랜만입니다'라는 코너에 패널로 출연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언젠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대본도 없이 은근히 웃음을 자아내던 그의 재주를 기억한 것이다. 시청률이 대단했다. '오랜만에' 한번 나오고 말 예정이었던 그는 제작진의 간곡한 청을 받아들여 그 후로도 '오랫 동안' 방송에 머물게 된다.

처음 얼마 동안은 방송이 너무 쉽다고 생각했다. 눈만 뻐끔거려도 대중은 웃어주었다. 변신 십년을 맞는 지금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돌아보니 소름이 끼칩니다."

씨름의 전적은 연습의 투명한 결과물이다. 새벽 5시에 기상하여 먹고 자는 시간 빼고는 오로지 연습이었다. 씨름은 많이 연습하면 느는데 방송은 어떻게 연습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천하장사 꼬리표가 결코 오래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영리한 그가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다.

마침내 깨달은 비결. 그것은 파트너의 소중함이었다. 씨름도 좋은 파트너를 만나야 붙어볼 만하듯이 코미디도 좋은 파트너를 만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두 명의 좋은 파트너를 만날 수 있었던 사실에 감사하고 있다. 바로 이만기와 이경규다.

씨름과 방송의 공통점이야말로 그가 힘들지 않게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이다. 대답은 의외로 "힘들다는 점이죠"다. 처음엔 코미디언이 '놀고 먹는' 줄로만 알았다. 방송에 나와 농담 몇 마디 던지고 큰돈을 버는 게 의아했다.

코미디언이 과로로 입원했다는 말을 들으면 도저히 이해가 안됐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한 차례 웃기기 위해 무려 7~8시간을 한 자리에 앉아 아이디어 회의를 해야 하는 현실을 겪고는 깨달았다. 세상에 거저는 없다고.

"운이 좋았습니다." 자신을 알아본 사람들이 다 그 분야의 일등이었다고 그는 믿는다. 교과서를 받아본 기억은 없지만 그의 인생에 교과 과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전해준 말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인생에 배움이 없으면 어두운 밤길을 걷는 것과 같다." 배움의 가치를 아는 그가 앞으로 벌이게 될 세상과의 씨름이 흥미진진하다.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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