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 피해자들 손배訴 패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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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베트남전 참전 군인과 가족들이 고엽제에 노출돼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며 미국 고엽제 제조회사를 상대로 낸 5조1천6백억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했다.

서울지법 민사13부(부장판사 金熙泰)는 23일 '베트남전 고엽제 피해자' 1만7천2백여명이 미국 고엽제 제조사인 다우케미컬과 몬산토를 상대로 1인당 3억원씩 요구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이 앓고 있는 각종 질병 중 염소성 여드름을 제외한 나머지 질병들이 고엽제 때문에 발병했다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고, 손해배상 소멸시효인 10년이 이미 지났기 때문에 원고들의 청구를 받아들이기 곤란하다"고 밝혔다.

국가가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 지원법에 따라 원고들을 고엽제 환자로 인정하고 있다는 원고측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참전용사들에 대한 보훈정책적 차원에서 고엽제법이 제정된 것이지 그 법 자체가 고엽제로 인한 손해배상의 인과관계가 입증됐기 때문에 제정된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고엽제와 관련해 몇 건의 손해배상소송이 제기됐으나 시효문제 등으로 모두 각하됐으며, 고엽제와 질병 간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판결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고엽제를 둘러싼 국내외 소송에서 원고들이 승소한 경우는 없었다. 다만 1984년 미국·호주·뉴질랜드 등의 고엽제 피해자 20만여명이 미국법원에 낸 집단소송에서 유사소송을 우려한 제조사측이 피해자들과 2억4천만달러에 합의한 적이 있다.

대표 변호인인 백영엽(白永燁)변호사는 판결 직후 항소의사를 밝혔다.

고엽제 피해자 1만7천여명은 99년 9월 베트남전 당시 미국이 유해물질인 다이옥신이 포함된 고엽제를 한국군 청룡·맹호·백마부대의 작전 지역인 광나이·퀴논 등지에 뿌려 피해를 봤다며 소송을 냈다. 이후 아홉 차례의 중재와 여섯 차례의 변론과정을 거쳤으며 이날 선고는 소송 제기 후 32개월 만에 나온 것이다.

이번 소송은 여러 면에서 기록적이었다. 원고측 변호인단이 1백2명에 이르고 원고측이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제출한 국가보훈처의 진료기록 등 증거자료도 트럭 1대분에 이를 정도로 방대한 양이었다.

또 소송액수도 국내 사법 사상 최대 규모였으며 인지대만 1백80억여원에 달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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