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는 일만 하는'마당쇠'는 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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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감독이나 선배 말에 무조건 따르지만 말고 따질 건 따지고, 큰 소리로 고함 쳐라." 축구 국가대표팀 히딩크 감독이 선수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경기장에서 상황은 수시로 변하는데 선수들이 감독 지시만 기다리고,선배 눈치만 본다면 이길 수 없다는 얘기다. '스타 경영인'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해선 안된다. 수동적인 행태는 창의성을 막고, 수익성을 해친다"고 말한다.

'히딩크 경영론'이 경영자 및 경영학자들 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 축구팀이나 기업은 다 같은 조직이며, 감독이나 사장은 다 같이 한 조직의 최고경영자(CEO)이므로 '경영 원리'가 같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삼성경제연구소 윤순봉 전무는 "한국 축구가 히딩크의 리더십 덕분에 한 단계 도약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며 "히딩크 경영론은 기업 경영에도 적용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비전은 분명하게, 전략은 구체적으로=히딩크의 목표는 '월드컵 16강'이다. 연습 경기에서 대패해도 16강의 꿈을 의심치 않는다. 비판도 많았지만 자신감을 잃지 않는 리더의 모습을 보였다. 그는 대신 한국 축구의 약점을 명확히 파악한 뒤 개선 프로그램을 분명히 제시했다. 체력을 강조한 게 한 예다. "세계적 수준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많이 뛰면서 공간을 선점하는 게 중요한데 체력은 그 밑바탕"이란 것이다.

비전을 분명히 하고 핵심 역량을 키우는 전략 수립은 기업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다.

구본무 LG 회장이 올 들어 부쩍 '일등 LG'를 강조하는 것은 임직원들에게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지적이다.

◇평가는 제대로, 자신감은 북돋워야=히딩크의 선수 선발·평가·보상·퇴출 기준은 과거의 명성이나 선입견이 아니라 능력 하나뿐이다. 그는 이를 위해 언제나 수많은 평가 항목으로 짜인 평가표를 작성한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체력과 스피드다. 아직 미숙한 차두리 선수가 발탁되고, 개인기 좋은 이동국 선수가 탈락한 것은 이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 정일재 상무는 "공정한 평가에 근거한 능력주의와 성과주의의 전형"이라고 평가한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우수 인력은 국적과 상관없이 확보할 것"이라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히딩크는 선수가 음주운전하다가 경찰에 적발돼도 문제삼지 않는다. 능력은 일로써 평가한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한발 앞서 생각하라=히딩크는 "공격할 때는 수비를, 수비할 때는 공격을 생각하라"고 말한다. 국민대 박상준(마케팅 전공)교수는 "이는 마케팅 이론의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생산과 마케팅 부서의 정례적 대화라든가 마케팅 담당자가 물건을 팔면서 느낀 점을 생산 부서에 전달(피드백)하는 것은 공격과 수비를 같이 생각하는 자세다.

히딩크는 "지더라도 연습 경기에서는 강팀과 맞붙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자신감이 생기고, 배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尹전무는 "세계화 시대에선 3등 안에 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선 제품 기획 단계부터 세계 시장에서 팔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영욱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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