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후보 시장주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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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는 시장주의자이다.

며칠 전 민주당의 노무현(盧武鉉)후보는 자신이 '시장주의자'라고 말했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나는 盧후보 또는 어느 대선 후보도 시장주의자이길 바란다. 이미지 개선용으로 '시장주의자'라는 용어를 쓰는 사람은 반드시 탄로가 나게 돼있다. 왜냐하면 시장주의라는 것은 하나의 생각의 체계이고 따라서 어떤 일관성을 요구한다. 그 일관성을 결할 때는 탄로가 나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의 상호 모순

그렇다면 시장주의라는 것은 어떤 생각의 체계일까?

인류에게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가지 가장 높은 이상이 있다. 문제는 이 두가지가 서로 모순된다는 데 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사람에게 자유를 주면 반드시 불평등이 온다는 이야기다. 사람은 모두 자질과 능력·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자유를 주면 어떤 사람은 하루에 토끼를 열마리 잡지만 어떤 사람은 한마리도 못 잡는다. 자유가 주는 가장 큰 장점은 그것이 있으면 떡이 커진다는 데 있다. 사람에게 욕심을 마음대로 부리게 해주면 열심히 한다. 그렇기 때문에 떡이 커지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열심히 해서 떡을 키울수록 불평등도 심해진다. 그러면 불행한 사람, 즉 배아픈 사람이 많아진다. 배아픈 사람을 줄이기 위해서는, 즉 사회를 보다 평등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필연적으로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 토끼를 몇마리 이상 못 잡게 하든지, 아니면 몇마리를 빼앗아 못 잡은 사람에게 나눠줘야 한다. 이렇게 자유를 제한해 평등해지면 좋긴 한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떡이 크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이란 항상 계산한다. 많이 잡아봐야 빼앗길 것 같으면 아예 적게 잡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 사회 전체의 떡은 필연적으로 줄어든다. 공산주의의 예에서 보듯 평등을 너무 좋아하다 보면 반드시 '쪽박'을 차게 돼있다. 예를 들어 노동시장에서 정리해고를 못하게 하는 것, 즉 고용주의 '자유'를 제한한 것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렀던가?

자유와 평등의 이 모순성 때문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시장주의라는 것은 한마디로 이 둘 중에서 '자유'쪽에 우선 순위를 두겠다는 생각이다. 평등이 싫어서가 아니라 떡이 커야 평등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란 한마디로 '자유'이다. 남을 해치지 않는 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래서 각자가 가진 능력·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곳, 그곳이 바로 시장이다. 시장주의란 것은 바로 사회의 각 분야에서 그런 시장을 만들자, 그래서 떡을 최대한 크게 키우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장주의자가 평등에 대한 추구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떡을 키우고 나서 떡을 키우고 싶은 생각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나누자는 것이다. 단 시장주의자가 주창하는 자유속에는 '나쁜 짓을 할 수 있는 자유'는 포함되지 않는다. 나쁜 짓 하는 자유는 철저히 경멸하는 것이 도리어 시장주의다. 이를 예를 들어 재벌정책에 적용해 본다면 이렇게 볼 수 있다. 기업이 투자를 하는 자유를 제한하는 것, 예를 들어 출자총액제 같은 것은 시장주의에 어긋난다. 그러나 나쁜 짓을 징벌하는 제도, 예를 들어 집단소송제 같은 것은 전혀 시장주의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反시장적인 출자총액제

결론적으로 시장이란 자유를 이야기한다. 진보주의자도 시장주의자가 될 수 있다. 시장을 키우는 것이 궁극적으로 노동자를 가장 잘 위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시장주의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제3의 길'로 대변되는 유럽 중도좌파의 새로운 구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구호는 '평등'과 '연대'가 아니다. '유연한 시장' '업적과 성공' '기업가 정신' '자기 책임'같은 것이다. 평등을 위해 자유를 쉽게 제한할 수 있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시장주의자가 아니다. '시장주의자'를 자처하는 노무현 후보가 이 점에서 일관성있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그가 진정한 시장주의자임을 보여주길 기대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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