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사관 아파트 신중한 접근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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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주한 미국 대사관이 서울 정동 덕수궁에 인접한 대사관저 내에 8층짜리 대사관 직원용 숙소(54가구)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현행 주택건설촉진법은 20가구 이상의 공동주택을 지을 경우 평형의 규제는 물론이고 주차장·어린이 놀이터 등 부대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건설교통부는 미국이 추진하는 시설은 외교관 숙소여서 주택건설촉진법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 시행령에 예외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일반 기업의 직원용 숙소 등 비상업적 시설에까지 일률적으로 주택건설촉진법의 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비합리적이라는 의견들도 있어 이의 개정 자체를 문제삼을 필요는 없으리라고 본다.

서울시에 따르면 현재 미국이 새 숙소 건설을 추진하는 부지는 일반주거지역으로 분류돼 있어 법적으로만 따질 경우 미국은 8층 높이로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애당초 문화재가 널려 있고 옛 왕궁과 인접한 지역을 왜 일반주거지역으로 했느냐고 따지는 것은 별도의 문제지만, 이미 인근 캐나다 대사관 신축 부지의 용도를 변경해 주고 러시아 대사관 신축 당시에도 혜택을 준 바 있어 형평상 미국 쪽에만 불이익을 줄 수 없게 돼 있다.

다만 용산 미군기지 내 숙소 건설, 차세대 전투기 사업자 선정 등을 둘러싸고 미국에 대한 국민의 감정이 곱지 않은 시점에, 미국 대사관의 민원성 부탁과 관련해 정부가 법안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오비이락(烏飛梨落)격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자칫 반미(反美)감정을 자극할 수 있어 신중한 일처리가 요망된다.

한·미 관계의 특수성 등을 감안할 때 미국에 협조할 것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미국도 동맹 관계의 성숙한 발전을 위해 우방 국민의 자존심과 민족 감정을 고려한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이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려 해서는 합리적으로 될 일도 감정 때문에 잘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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