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완 시대 열렸다 ② ‘대륙 특수’ 누리는 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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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대만이 29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한 데 이어 이날 ‘양안 (兩岸) 경제협력위원회’를 출범시키기로 합의했다.

6개월에 한 번씩 열릴 예정인 이 위원회에는 경제·무역을 주관하는 정부 기구들이 대거 참가, 양측 간에 발생하는 각종 무역 현안 등을 풀어가게 된다. 양측 간 관세 장벽을 허무는 틀뿐 아니라 교류 확대에 따른 갈등 요소를 잠재우기 위한 상설기구까지 출범시킨 것이다.

이 같은 역사적인 합의를 계기로 양안 경제가 얼마나 밀착돼 있는지, 그리고 ECFA에 대해 대만 기업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현지 취재를 통해 짚어봤다.

대만의 전자유통업체 바이나오후이(百腦匯)는 ‘양안 FTA’ 체결 두 달 전인 4월 말에 이미 중국 서남부 내륙 도시인 충칭까지 진출했다. 중국과 대만 업체들의 제품이 바이나오후이 충칭 매장을 점령했다. 중국의 대표적 컴퓨터 업체인 레노보(聯想)와 대만의 훙지(宏碁·ACER), 화숴(華碩·ASUS) 제품이 나란히 매장에 진열돼 있다. [충칭=장세정 특파원]

28일 오전 7시30분쯤 대만 타이베이시 타오위안현의 관인(觀音)공업구. 이곳에 입주한 푸위안(富元)정밀코팅 공장의 직원 50여 명은 3조4교대 근무를 끝낸 노곤한 몸을 이끌고 공장 문을 나섰다. 전날인 27일은 휴일임에도 밤 11시30분부터 작업에 들어가 이날 새벽에야 일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회사 피터 류(劉) 총경리(사장)는 “중국에서 주문이 밀려와 휴일·평일 할 것 없이 하루 24시간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맘때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휴일엔 쉬면서 공장을 쉬엄쉬엄 돌렸다. 

이 회사는 자동차용 코팅유리와 휴대전화용 플라스마패널(PDP)·터치패널을 생산하는 직원 250여 명 규모의 탄탄한 중소기업이다. 중국 업체에 코팅유리를 납품하는 덕에 요즘 신바람이 났다. 중국·대만 간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이 타결됨으로써 수년 내 대중 수출 규모가 급격히 늘어날 걸로 기대되는 까닭이다. 류 총경리는 “양안 ECFA가 체결돼 우리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더 커지게 됐다”며 “주문량이 큰 중국 업체들의 방문이 더 늘어날 것 같아 흥분된다”고 말했다. ECFA 협상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 회사 수출량은 확 늘어났던 터였다. 터치패널 생산라인은 중국 주문량이 올해 들어 50%나 늘어 직원을 새로 뽑고 라인을 늘렸다고 한다. 류 총경리는 “민진당이 집권했던 8년 동안 얼어붙었던 양안관계가 국민당 정부가 들어서고 확 풀리면서 중국 기업들이 대만 제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관인공업구에 입주한 대만의 한 화학업체 사장은 “중국 기업의 관행상 정해진 매뉴얼보다 그때그때 변칙적으로 결정하는 일이 많은데 이는 관습이 통하는 대만 기업들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이라며 그 역시 ECFA 의 특수를 기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출 동력이 소진된 대만은 마이너스 성장률과 경기침체에 허덕였다. 이때 중국은 구원투수를 자임했다. 대규모 구매단 파견이 신호탄이었다. 지난해 11월 장쑤(江蘇)성의 3000명이 넘는 구매단이 대만을 방문해 41억 달러에 달하는 대만 제품을 사들였다. 올해 들어선 중국의 9개 TV제조업체가 AUO 등 대만의 3대 LCD업체로부터 53억 달러 규모의 구매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기준 국민총생산(GDP) 가운데 수출 비중이 75%를 넘나드는 대만의 최대 수출국은 중국이다. 지난해 대만 제품 41%를 중국에 팔았다. 올해 1분기에는 이 수치가 42.8%로 늘어났다.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은 29일 “대만과 중국 간 ECFA가 비타민일 수는 있으나 절대로 모든 질병들을 고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마 총통은 “ECFA 서명 후 외국 기업들이 대만의 동아시아에서의 지리적 위치를 중시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 본부를 대만에 설립하며 대만 투자를 늘리는 동시에 대만 기업들도 세계 본부를 대만에 두기를 바란다”고 했다.

대만 국립정치대학 천샤오훙(陳小紅·사회학) 교수는“단일한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양안 간 경제협정은 다른 나라들의 FTA와는 차원이 다른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 커질 것”=28일 오후 타이베이시 베이핑(北平) 동로(東路) 민진당 중앙당사 앞에서 만난 30대 직장인 천사오광(陳燒光)은 “ECFA가 발효되면 당장 대만 경기는 살지 몰라도 대만 경제가 중국에 예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다른 30대 직장인은 “대만 공장들이 대륙으로 빠져나가면 실업난이 가중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타이베이=정용환 특파원
사진=장세정 특파원



대만 행정원 자오젠민 부주임 “중국과의 경제협력 대만에 17조원 이익”

“대만은 한국·일본·동남아 국가들은 물론 미국과도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할 것이다.”

대만 행정원 대륙위원회 자오젠민(趙建民·사진) 부주임(차관급)은 28일 행정원 청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글로벌 자유무역이라는 흐름에 대만이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대만 간 양안문제를 다루는 대륙위원회는 한국의 통일부에 해당한다. 자오 부주임은 “중국·대만 간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이 전 세계 양자간 경제협정 가운데 가장 잘됐다는 게 대만 언론의 평가”라며 “ECFA는 대만 경제의 도약을 달성하는 데 새 동력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권이 바뀌면 대중 정책이 바뀌지 않을까

“ECFA로 대만이 얻는 이익이 138억 달러(약 17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어떤 정당이 집권하든 ECFA를 접거나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

-많은 대중 수출 품목에서 한국과 경쟁 관계 같다.

“ECFA 적용 품목은 800여 개에 불과하다.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지 않다. 대만은 한국·일본·동남아시아 등 각국과 FTA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번 협정을 통해 양안관계가 더 호전되면 다른 나라와의 FTA 협상 분위기도 개선될 것이다.” 

타이베이=정용환 특파원

차이완 시대 열렸다 ① 14억 중화시장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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