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과 북한변수] 北風위력 옛말… 자칫 逆風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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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남북 분단과 대치 상황은 국내정치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에 여야는 북한 변수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대책 마련에 부심해왔다. 북한은 북한 대로 직·간접적으로 남한의 선거에 간여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박근혜(朴槿惠)의원의 방북을 계기로 대선에서의 북한 변수를 집중 해부한다.

북한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으로 남북관계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한 이후 대선과 총선 등 주요 계기 때마다 우리의 정치적 선택에 관여하려 시도했고, 개입했다. 이른바 '북풍(北風·북한 변수가 미치는 영향)'이다.

87년 대선 직전에는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이 선거 결과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으며, 92년 대선 때는 남조선노동당 사건이 터졌다. 96년 총선 때는 판문점 무력시위 사건이 발생했고,이듬해 대선에서는 '오익제 편지사건' 등으로 떠들썩했다.

이런 경험에 비춰본다면 올 대선에서도 북한 변수가 어떤 모습으로든 나타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이 남한 대선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느냐에 따라 남북관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에 깊은 관심=朴의원은 "金위원장이 남한 대선후보의 지지율에 대해 내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소상히 알고 있었다"면서 "몇% 오르내린 것까지 알더라"고 말했다.

金위원장은 지난달 초 방북한 임동원(東源)특사와 만나서도 대선에 깊은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金위원장은 특사에게 "남조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으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특사가 "뚜껑을 열어봐야지 지금은 잘 모른다"고 하자 金위원장은 "거 참 이해할 수 없는 제도구먼"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베이징(北京)에서 남측 관계자와 접촉한 북한의 아태평화위 관계자의 말은 더 노골적이다.

그는 "임기말이 가까워진 현 정권과는 더 이상 관계를 진전시킬 생각이 없다"며 "경의선 착공은 다음 정권에 선물용으로 줄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회창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노무현 후보의 바람이 거세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도 했다 한다. 최근 방북한 기자가 만났던 북한의 대남 관계자들도 "노무현은 어떤 사람이냐, 평은 어떠냐""대통령 아들 문제가 DJ의 정권 재창출에 빗장을 지를 수도 있을 것"이라며 관심을 보였다.

북한측이 아직 이번 대선 등과 관련해 명확한 입장을 밝힌 적은 없다.다만 지난 1월 22일 평양에서 열린 정부·정당·단체 합동회의에서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남조선에서 누가 집권하고 어떤 정권이 나오든 6·15 공동선언은 변함없이 고수되고 철저히 이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향력 얼마나 되나=북한 변수가 대선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동국대 고유환(高有煥·북한학)교수는 "여론조사를 보면 대선 관심사안 중 남북문제의 비중이 줄어드는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그는 그러나 "북측도 분명히 어느 정권이 들어서야 자신들에게 유리할지를 계산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특히 6·15 공동선언의 이행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판단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남북 화해·협력 분위기의 확산과 국민의 대북의식 수준 향상으로 북풍이 작용하기는 쉽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정상회담은 물론 이산상봉,국방장관 회담,대규모 대북지원 등을 거치면서 웬만한 북한 이슈에 대해서는 무덤덤해졌다는 얘기다.

통일연구원 전현준(全賢俊)연구위원은 "북한은 남북대화의 연속성을 적절한 수준에서 유지하면서 여야 어느 쪽이 정권을 잡던 최악의 상황을 막는데 역점을 둘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창현·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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