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필요한 탈북자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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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중국 선양(瀋陽)의 일본 총영사관 탈북자 연행사건을 놓고 일본과 중국간 외교마찰이 가열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중국 공안의 영사관 침범을 강력히 항의하고 탈북자 5인의 신병인도를 요구하자, 중국은 탈북자의 연행이 일본 영사의 동의 아래 이뤄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양국이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어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은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며칠 전 공개된 비디오 테이프만 보더라도 몇가지 사실은 분명히 드러난다.

중국式 얼버무리기 해법

우선 탈북자의 진입 시도가 있었을 때 중국 공안은 허가 없이 영사관 안에까지 들어가 탈북자들을 끌어냈다. 이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중국 외교부는 '영사관계에 관한 빈 협약'을 들먹이며 공관의 안전을 위한 조치였다고 강변하지만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그것은 공관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탈북자의 공관 진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두 살짜리 어린아이를 업은 부녀자를 난폭하게 끌어낸 행위는 공관 보호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일본 영사관측의 태도 역시 개탄스러운 것이었다. 영사관에서 끌려나가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하는 부녀자의 처절한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떨어진 중국 공안의 모자를 집어 건네는 영사에게서 '공관의 불가침'이나 '기본적 인권의 존중'에 대한 최소한의 문제의식조차 느낄 수 없다. 남의 나라 외교관의 자질까지 문제삼을 생각은 없지만 이것이 일본 외교의 전반적인 수준이 아니길 바란다. 그러나 저런 식으로 행동했던 자가 일본측 주장처럼 이미 영사관에 진입한 두명의 탈북자의 연행을 과연 거부했을까 의문이 든다. 그저 골칫거리 정도로 생각하고 중국당국이 빨리, 대충 수습해주길 바랐던 것은 아닐까? 분명히 거부했는 데도 중국측이 마음대로 영사관에 들어와 두명을 연행해 갈 수 있었을까?

이번 사건이 어떤 식으로 귀결될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이제 탈북자 문제는 더 이상 덮을 수 없는 국제인권문제가 됐다. 중국은 그동안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길 거부하는 한편 일단 외국공관에 진입한 탈북자에 대해서는 제3국을 거쳐 한국행을 허용해 적당히 얼버무리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연이은 공관진입으로 탈북자 문제가 국제적 주목을 끌자 중국은 이를 차단하기 위해 강경책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탈북자와 이들을 돕는 NGO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는가 하면, 탈북자의 피난처가 되고 있는 외국공관에 대한 경계를 한층 강화했다. 그러나 중국의 의도와 달리 이러한 강경조치는 오히려 탈북자 문제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중국이 인권의 국제적 보호라는 시대 조류를 거스르는 강경책을 계속한다면 앞으로 중국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 정부도 탈북자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정부는 탈북자 문제에 대해 소위 '조용한 외교'를 주장해왔다. 그 이면엔 탈북자 문제로 북한이나 중국과 관계를 어렵게 하지 않겠다는 뜻이 있다. 또 문제가 공론화될 경우 대대적인 단속이 따르고 결국 탈북자의 처지만 어려워진다는 나름의 현실적 고려가 있었을 것이다.

난민 인정해 보호 받아야

이러한 방법론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과연 탈북자 문제에 대해 우리의 분명한 '원칙'이 있느냐이다. 원칙없이 북한이나 중국의 눈치만 보면서 사안에 반사적으로 대응하는 접근방식은 이제 한계에 달했다. 지금부터라도 탈북자는 우리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며 국제법상 보호를 받아야 하는 난민이라는 기본원칙을 확실히 해야 한다. 북한이 이에 반발하고 중국이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관되게 우리의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 원칙이 정해지면 방법은 얼마든지 창의적으로 찾아낼 수 있다. 남북대화가 중단되고 한·중관계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몇 가지 소중한 원칙이 있다는 사실을 상대가 분명히 알고 존중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탈북자 문제도 해결의 길이 열리며, 남북관계나 한·중관계도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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