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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매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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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농구 용어 가운데 미스매치(mismatch·불일치)라는 말이 있다. 상대팀 장신 센터를 키작은 가드에게 맡겼다간 골밑이 번번이 뚫리듯 공격수와 수비수의 신장이나 포지션이 맞지 않는 상황을 가리킨다.

농구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미스매치는 얼마든지 벌어진다. 가령 어떤 기업이 물건 판 돈은 석달 후에 받는데 원료값은 한달 후에 주기로 했다면 두달간은 손해를 봐야 한다. 자칫하면 부도를 맞을 수도 있다.

5년 전 외환위기의 원인을 미스매치에서 찾는 이론도 설득력이 있다. 당시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재경부 차관 등으로 환란(換亂) 발생 및 극복과정을 체험했던 정덕구(鄭德龜)서울대 교수는 지난주 미국 스탠퍼드대와 버클리대 세미나에서 '미스매치 현상으로 바라본 한국의 금융위기'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이런 분석을 시도했다. 그는 1990년대 이후 민주화와 개방화·국제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과정에서 속도와 순서를 조절하지 못해 우리 경제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균형을 이루지 못한 점에 주목한다.

종금업계가 대표적인 사례다. 위기 직전인 97년 10월 현재 국내 종금사들이 해외에서 조달한 자금 2백억달러 가운데 1백29억달러(64.4%)는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단기자금이었다. 그러나 조달한 돈 가운데 1백68억달러(83.7%)는 1년 이상 장기대출로 굴렸다. 규제가 갑자기 풀리면서 종금사들이 빌리기 쉬운 단기자금을 끌어들여 멋대로 굴리는 동안 당국은 현황 파악도, 관리도 제대로 못한 채 나라 전체가 부도 위기로 몰려갔던 것이다.

鄭교수가 미국에서 "이런 미스매치는 한국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역설하던 날 국내에서는 포스코 수뇌부의 김홍걸·최규선씨 면담과 타이거풀스 주식 고가매입 의혹이 터졌다. 포스코는 17개월 전에 정부 지분을 완전히 털어내고 민영화됐다. 그러나 홍걸씨 관련 의혹이 보여주듯, 주인이 분명치 않은 상태에서 권력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는 지배구조로 인해 '무늬만 민영화'라는 허점을 드러냈다. 상투 틀고 양복 입은 모양의 이런 불일치를 빨리 해결해야 포스코도 신뢰를 되찾고 제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하기야 미스매치가 어디 포스코뿐이랴.

손병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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