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평가 "評이 안좋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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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초·중·고교에서 4년째 시행하고 있는 수행평가가 빈부격차에 따른 학력차를 조장하고, 평가과정의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등 잡음이 그치지 않고 있다.

교육당국엔 이와 관련한 민원이 쇄도하고 있고, 과목별로 학기당 최대 20개 이상의 과제를 내야 하는 학생들은 수행평가를 '고행(苦行)평가'라고도 부른다.

올해 초 교육과정평가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학생 73.6%와 학부모 59.4%가 평가의 공정성을 의심하는 등 평가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과제물 이행·발표력·학습태도 등을 내신성적에 반영하는 이 제도는 과목별 배점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중학교에는 50% 이상 반영토록 권장하고 있다.

◇플루트·클라리넷 다루면 고득점=서울 C·K고등학교는 최근 음악과목에 대한 수행평가를 하면서 플루트·클라리넷 등 특수악기를 다루는 학생들에게 좋은 점수를 줘 물의를 빚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고액과외가 필요한 특수악기 조작 능력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은 빈부차를 조장하는 행위"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학부모 金모(41·서울 금천구)씨는 최근 "일부 학생이 학원에서 그림을 사서 제출해 그림을 직접 그린 학생이 오히려 불이익을 당했다"며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참교육학부모회 박유희 회장은 "일부 예체능계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수행평가 아르바이트가 성행하고 있다"며 "투명한 수행평가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학원 대행·조편성 잡음=서울 W중학교는 최근 사회과목 수행평가에서 '섀도 캐비닛'이 무엇인지를 알아오라는 과제를 제시했다. 이 학교 3년생 K군(15)은 "교과내용에 포함되지 않은 내용이어서 상당수 학생이 학원 선생님한테 부탁해 과제물을 제출했다"고 말했다.

강남지역에선 유적지 답사보고서(지리) 등 과목별 수행평가 과제를 대신해 주는 학원이 성업 중이다. 일선 교사들도 이같은 문제점을 알고 있지만, 잔무 등이 많아 일일이 표절·짜깁기 등을 색출해 낼 수도 없다고 말한다. 교육과정평가원이 교사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 '과제물을 다른 사람이 도와준 사실이 밝혀져도 묵인한다'는 비율이 27.8%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별 수행평가를 하는 과목의 경우 조편성 과정에서 자주 잡음이 발생한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이 같은 조에 편성해 달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잘하는 학생이 끼인 조에 들어가 '무임승차'하려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서울 E중학교 崔모 교사는 "공동과제 외에 개인별 과제를 내서 학생 개개인을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업무부담 때문에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대 교육학과 백순근 교수는 "모든 과목에 대해 획일적으로 수행평가를 의무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교원 수급 문제 등 학교 여건에 맞춰 나름의 평가 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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