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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 리콜'원작자가 쓴 SF고전 상상속 미래인 통해 현대인 모순 조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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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SF 장르에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 저자 필립 K 딕(1928~82)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더라도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토탈리콜'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저자는 이 두 영화의 원작을 비롯해 수많은 SF소설을 남긴 SF계의 저명 작가다.

필립 K 딕의 이번 소설집은 그의 중·단편이 국내에 최초로 소개된다는 의의를 지닐 뿐만 아니라 뛰어난 SF 소설은 여지없이 인간 실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영화 자체에 대한 분석을 넘어 철학적 텍스트로도 자리잡은 '블레이드 러너'에서 볼 수 있듯,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복제인간을 통해 저자가 묻는 것은 "태어났다고 해서 인간이고 만들어졌다고 복제인간인가"하는 실존적 질문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올 여름 개봉을 목표로 연출하고 있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포함해 이 책에 실려 있는 8편의 중·단편 모두 SF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82년에 사망한 저자의 작품이 2002년에 영화화된다는 사실은 저자의 시대에 앞선 뛰어난 창작력을 입증한다.

우선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보자. 주인공은 미래를 예측하는 기계 장치를 통해 예비 범죄자를 체포해 수용소로 보내는 경찰국의 최고 책임자. 그가 어느날 자신도 살인자가 된다는 보고를 받게 된다. 미·중 전쟁 이후 권력을 잃은 군부의 음모도 끼어든다.

스토리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그가 결국 어떤 의지와 목적에 의해 살인을 감행하게 되는 결말에 이르면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를 무시하고 기계 결정론적으로 흘러가는 세태에 대한 은근한 풍자와 조소임을.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고도로 발달된 인공지능 기계에 의존해 감정을 조절한다는 내용의 '스위블'도 은유적이긴 마찬가지다.

기계가 내재하는 오류 가능성을 알면서도 그것에 의지하며 또다시 불안해 하는 인간들의 어찌해 볼 수 없는 어리석음이란.

이밖에도 인간과 완전히 똑같은 복제 인간들의 출현으로 인간의 본질에 혼란을 느끼는 스칼란과 윌크스('우리라구요!'), 전쟁으로 파괴된 미래의 지구에서 퍼키 펫 인형 놀이에서나 과거의 즐거웠던 삶을 사는 사람들('퍼키 펫의 전성시대') 등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모두가 미래 사회 인간의 외양을 띠고 있긴 하지만 한 박자만 숨을 고르고 생각해 보면 현재의 우리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아니 오히려 미래의 시점을 통해 포착해 낸 인간의 모순이 현재 삶의 질곡을 더욱 극명히 드러내곤 한다.

예컨대 다른 모든 사람의 생각과 같은 생각을 갖게 해준다는 기계 '스위블'을 이용하는 미래사회의 사람들은 다른 삶을 꿈꾸기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현대 대중사회 평균적 인간의 한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소비(스위블 구매)라는 사실은 광고를 보며 유도된 욕망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모습을 비꼬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은유와 풍자에 대한 해석에 앞서 저자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이야기 구조의 탄탄함이다.

소설의 기본 정의가 "거짓말이되 믿을 만한 거짓말을 쓰는 것"이듯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마치 있을 법한 일로 느껴 빠져들게 하는 이야기 전개와 인물 설정, 반전과 재반전이라는 재미난 플롯이 뛰어나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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