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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가는 풀뿌리 민주주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대통령 아들들의 게이트 연루 의혹으로 나라가 떠들썩한 판에 광역지방자치단체장들이 비리 혐의로 줄줄이 사법처리되고 있다. 16명의 시·도지사 가운데 5명이 구속됐거나 사법처리를 기다리는 상황이어서 국민은 "지방자치가 부패·비리의 온상인가"라고 탄식하며 분개하고 있다.

더구나 월드컵이 코 앞에 닥친 시기에 돌출한 단체장의 구금으로 막바지 행사준비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국제적 망신까지 자초하게 됐다.

광역단체장 두명(문희갑 대구시장·최기선 인천시장)이 각각 다른 뇌물수수 혐의로 한날 구속된 것도 초유의 일인데, 심완구 울산시장까지 건설사에서 3억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 소환조사를 앞두고 있다. 이에 앞서 유종근 전북지사가 지난 3월 구속됐고 임창열 경기지사는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원심이 파기된 상태다.

단체장의 비리는 광역·기초를 가리지 않아 현재까지 민선 2기 단체장 49명이 유죄판결을 받았거나 사법처리가 진행 중이다. 이는 지난 민선 1기 때 23명의 두배를 웃도는 숫자다.

단체장들의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잘못된 선거제도,불합리한 권한 배분, 허술한 감시제도 때문이다. 막대한 선거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비리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돈을 받은 대가로 인사나 인허가의 편의를 봐주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사법처리된 단체장의 절반 가량에 뇌물죄가 적용된 것을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여기에 인사·예산 등 지방에 꼭 필요한 권한은 중앙이 통제하고 국가 전체의 조정이 필요한 도시계획 업무 등은 지방에 넘긴 불합리한 권한배분, 지방행정에 대한 지방의회와 주민의 감시·감독 허술 등도 단체장의 자의적인 집행과 비리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3기 민선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 선거가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썩어가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해 후보들의 정책과 비전은 말할 것도 없고 청렴성도 꼼꼼히 따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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