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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노래한 시 11편 '날개' 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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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연가곡'아름다운 부산'을 부산 출신의 신예 작곡가 고영신씨에게 위촉해 초연한 한울림합창단(지휘 전상근).

"부산입니다/ 바다에 버무린 꼼장어 한 접시에/ 남항을 들이키고/ 나의 오줌은 태평양이 됩니다/ 왁자지껄한/ 청춘들의 일몰/ 즐거운 섭취와 배설을 위하여/ 고래 고기/ 그 속살을 씹으면서/ 피곤한 노동을 풀어놓습니다"(강남주'자갈치에서')

지난 18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오륙도'(이은상 시)를 시작으로 부산을 주제로 한 시에 곡을 붙인 합창곡이 울려퍼졌다. 한울림합창단(지휘 전상근, 단장 차재근)이 부산 출신의 신예 작곡가 고영신(38)씨에게 위촉, 1년 걸려 완성한 창작 연가곡'아름다운 부산'이 첫선을 보이는 자리였다. 한 명의 작곡가가 같은 주제로 연가곡을 작곡한 경우는 이번이 국내에서 처음이다.

처음부터 독창 버전으로도 연주할 수 있도록 작곡된 것도 특징이다. 애초에 독창곡으로 발표되었다가 합창곡으로 편곡돼 연주되고 있는 한국 가곡이 많기 때문이다. 초연에 즈음해 출간된 악보집에도 합창곡과 독창곡 버전을 모두 실었다.

한창국('해운대').박목월('하단').정종수('태종대에서').권경복('광안리 밤바다').정남순('송정고갯길에서').윤일광('을숙도') 등 시인들은 다양했지만 항도의 풍광과 부산 시민들의 정서를 듬뿍 담은 내용 면에서 일관성이 돋보이는 연가곡이었다.

초연되는 작품은 단원들은 물론 관객들에게도 부담스럽게 마련이다. 그래서 전반부에 여섯 곡이 연주된 후 합창단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작곡자가 무대에 나와 해설을 곁들여 청중의 이해를 도왔다. 또 작품도 난해한 현대적 기법을 동원하기보다 처음 들어도 쉽게 가슴에 와닿는 민요 가락과 재즈 화음을 군데군데 구사해 연주 효과를 높였다.

작곡가 고영신씨는 서울대 작곡과를 거쳐 뉴욕 매네스 음대와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립대 대학원에서 수학한 후 서울대.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 중. 그는"음악 공부를 위해 부산을 떠난 지 19년이 되었지만 언제나 고향이 그립다"며 "'낙동강-둔치도'(정남순 시)는 부산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썼다"고 밝혔다.

차재근 단장은 "부산을 주제로 한 가곡을 합창으로 편곡해 연주하고 싶었는데 몇 곡밖에 없어 아예 신작을 위촉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에 참석한 원로 피아니스트 제갈삼(전 부산대 교수.79)씨는"부산의 문화적 정체성을 찾기 위한 좋은 시도"라고 말했다.

1978년 부산에서 민간 합창단으로 출범한 한울림합창단은 단원 56명 중 절반 가량이 비전공자 출신. 최근'다시 부르는 겨레의 노래''변훈 추모 음악회'등 개성있는 기획 공연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부산 =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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