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의 아픔 이긴 46년간의 효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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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산가족이라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으로 맺어진 인연에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상을 받다니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46년간 양어머니를 봉양한 효성으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는 표진모(表鎭模·72·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인정리)할아버지는 "비록 양아들이지만 자식된 도리를 했을 뿐 훈장 탈 일을 한 적이 없다"며 연신 손사래를 쳤다.

表옹과 1백1세된 양어머니 어순덕(魚順德)할머니는 모두 북에 가족을 두고 있는 이산가족.

황해도 안악군이 고향인 表옹은 한국전쟁 때 북한군으로 참전했다 반공포로로 남한에 정착하게 됐으며 魚할머니는 전쟁 와중에 남편과 자식들이 북으로 피난간 뒤 고향에 혼자 남게 됐다.

表옹은 군대 동료로부터 "같은 처지끼리 서로 의지하며 살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1956년 魚할머니를 양어머니로 모시면서 인정리에 살게 됐다.

表옹은 전쟁의 포화로 폐허가 된 집을 수리하고 옆에 사랑채를 새로 지은 뒤 1천2백여평의 논을 경작하며 魚할머니를 친어머니처럼 봉양하기 시작했다.

결혼하면서 생계를 위해 인근 속초에서 건축노동일을 하느라 魚할머니와 떨어져 사는 동안에도 수시로 부인과 함께 본가를 오가며 정성껏 수발을 들었다.

96년 발생한 고성 산불로 할머니의 집이 전소되자 表옹은 속초 생활을 접고 인정리로 다시 돌아와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고 치매 증상까지 보이는 魚할머니를 부인과 함께 지극 정성으로 모시고 있다.

表옹은 또 魚할머니를 위해 두차례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한 결과 남편과 1남2녀 중 막내딸만 생존해 있다는 연락을 받았으나 충격을 받을까봐 아직 알리지 못했다.

表옹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북에 있는 막내딸을 만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소원"이라며 눈물을 끌썽거렸다.

고성=홍창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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