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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왜 문제인가요 침략전쟁 반성 없이 戰犯<전범> 넋 기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1.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지난달 21일 야스쿠니(靖國)신사라는 곳에 찾아가 절을 해 우리나라와 중국을 또 화나게 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는 도대체 어떤 곳인가요?

일본 수도 도쿄(東京)의 한복판인 지요다(千代田)구의 3만여평 부지에 전통양식으로 지어진 커다란 건물이 여러 채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야스쿠니 신사입니다.

신사(神社)가 무엇을 하는 곳이냐구요? 일본엔 모든 자연현상이나 인간의 활동에는 제각기 이를 관장하는 신이 있다고 믿는 고유의 종교가 있습니다. 이를 신도(神道)라고 하죠. 농사의 신이 있는가 하면, 물의 신·숲의 신·부엌신 등 8백만 종류의 신이 있다고 합니다. 신사는 이들 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지요.

야스쿠니 신사는 그 많은 신들 가운데 메이지(明治)유신(1867) 이후 근대 일본이 치렀던 내란과 전쟁, 예를 들어 세이난(西南)전쟁·청일전쟁·러일전쟁·제2차 세계대전 등에서 숨진 전몰자(戰沒者) 2백46만여명의 명부(이름이 적힌 책)를 보관한 곳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유골이 묻혀 있는 곳은 아닙니다.

2.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숨진 사람을 모시는 건 세계 어느 나라나 다 마찬가지인데 왜 유독 야스쿠니 신사만 문제가 되는 건가요.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진 전사자 명부에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14명이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초 한국을 합병하고 중국을 침략한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시작으로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나치 독일과 함께 전세계를 비극으로 몰아넣은 사실은 잘 아시죠?

제2차 세계대전 후 승자인 연합국은 전쟁을 일으켰거나 적극 가담한 사람들을 재판에 넘겼습니다. 이 가운데 당시 총리로 전쟁을 기획하고 지휘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핵심인물 14명은 사형에 처해졌죠. 이들이 전범 중 가장 죄가 큰 A급 전범입니다.

그러니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서 절을 한다는 것은 곧 A급 전범의 혼령 앞에서 일본인을 대표해 존경과 추모의 뜻을 표시하는 셈이 되죠. 전사자의 유족이나 후손이 개인적으로 참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 총리의 참배는 또 잘못된 과거사를 청산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한 것으로 비춰지게 됩니다. 특히 피해자였던 한국·중국 입장에선 더욱 문제가 되죠.

3.일본 국내의 여론은 어떤지요.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태평양전쟁에는 수많은 일본인이 동원돼 목숨을 잃었고,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는 원자폭탄 공격까지 받았죠. A급 전범들은 일본을 전쟁으로 이끈 책임자들이므로 총리가 참배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또 총리가 종교기관인 신사에서 참배하는 것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규정한 헌법에 위반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고이즈미 총리가 지난달 참배할 때 손뼉을 두번 치는 신도의 전통적인 참배방식을 따르지 않고 묵념만 한 것은 그런 비판을 의식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참배를 적극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본엔 비록 소수이지만 과거의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은커녕 오히려 미화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이른바 '우요쿠'(右翼)라 불리는 극우파 단체들이죠. 이들은 일본제국주의 시절을 그리워하고, A급 전범들을 영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한 이웃나라들의 비판을 남의 집안일에 참견하는 '내정간섭'이라고 여겨 불쾌해 하는 일본인도 많습니다. 전범일지라도 이미 죽은 사람에게 참배하는 것은 문제가 안된다는 의견도 널리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일본인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별다른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듯합니다.

4. 고이즈미 총리는 왜 참배를 고집하는 겁니까?

그는 지난해 총리 취임 전 "총리가 되면 한해에 한번씩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왜일까요? 자민당은 기본적으로 보수성향의 정당이기 때문에 참배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전쟁 희생자들의 유족단체는 선거에서 상당한 표(票)를 동원할 수 있어 정치적 영향력이 크죠. 고이즈미 총리의 공약도 표를 의식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물론 고이즈미는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개인적인 소신도 강합니다.

그 결과 고이즈미 총리는 취임 첫 해인 지난해 8월 13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데 이어 올해엔 지난달 21일 사전예고 없이 참배했습니다.

5. 그럼 내년에도 똑같은 문제가 되풀이될까요?

일본에서도 야스쿠니 문제의 해결방안을 찾자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를 종교법인이 아닌 특수법인으로 전환시켜 위헌소지를 없애거나 별도의 국립묘지를 마련하는 방안도 나왔습니다.

또 고이즈미 총리의 지시로 자문기구인 '추모와 평화를 위한 기념시설을 생각하는 간담회'가 만들어져 올 12월까지 결론을 내릴 예정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A급 전범과 다른 전몰자 명부를 따로 보관할지 여부입니다. 이를 분사(分祀)라고 하지요. 하지만 유족들의 반발 때문에 쉽지는 않을 듯합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고가 마코토(古賀誠) 일본유족회 회장에게 "A급 전범이 합사(合祀)되지 않는 국립묘지가 만들어지면 나부터 참배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6.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진 혼령 중엔 한국인도 있다는데요.

그렇습니다. 태평양전쟁 때 군대에 끌려갔다가 희생당한 한국인 2만1천명의 명부도 보관돼 있습니다. 대만인도 2만7천명이 있구요. 한국의 유족들은 한국인 희생자들의 이름을 야스쿠니 신사의 명부에서 제외해 줄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낸 상태입니다.

<지금까지 틴틴월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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