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産 메기 이름 규제,쇠고기에 원산지 표시제>- 짙어지는 美 보호무역 색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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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부시 미 행정부의 산업 및 통상정책에 보호주의 색채가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철강산업 보호를 위한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조치)발동으로 주요국과 통상마찰을 빚고 있는 가운데 농산물 보조금 확대법안도 7일 상원을 통과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자국산업 보호가 먼저라며 세계무역기구(WTO)규정과는 맞지 않는 법안이나 행정조치들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 1월 조지 W부시 대통령은 베트남산 메기 수입을 규제하기 위한 억지 법안에 서명을 했다. 베트남산 메기에는 메기(cat fish)라는 이름을 쓸 수 없도록 한 것이다. 1997년 미국 시장 점유율이 7%에 불과하던 베트남산 메기가 지난해 20%(약 8천만달러)로 급증하자 미시시피강 유역의 양식업자들이 들고 일어났고, 그 결과 탄생한 법안이었다.

생김새와 맛이 아무리 똑같아도 미국산과는 생물학적 학명이 다르다며 상품판매대에서 '캣피시'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지난달 11일 바트 스투팩(공화)·스티브 라투레(민주)하원의원이 공동 제출한 '군수물자 구입시 철강원료에 따른 구매제한 법안(H.R.4161)'은 정도가 더 심하다.

법안의 골자는 "국방부가 군함·탱크 등 각종 군수물자를 구매할 때 미국 내에서 (철광석이)용해되고 주조가 이뤄지지 않은 철이 조금이라도 들어간 물자는 (안보상 불가피하거나 미국 내에서 생산되지 않을 경우를 제외하고는)구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발의한 의원들은 국가 안보차원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정책적 이유로 수입제품의 차별을 금지하는 WTO 규정에 명백히 어긋나는 것이다. 이같은 보호무역주의는 캐나다·멕시코와 무관세 교역을 원칙으로 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마저 흔들고 있다. 지난 2월 미 의회는 캐나다산 수입목재에 제동을 걸었다.

캐나다에서 값싼 목재가 많이 수입돼(지난해 58억달러) 노스다코다주 등의 산림업자들이 타격을 받자, 19.3%의 상계관세와 최고 15.8%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멕시코와는 미국 국경인접 목장에서 사육된 뒤 텍사스에서 도축돼 미국에서 팔리던 쇠고기 문제로 마찰을 빚었다.

미 하원이 "앞으로 쇠고기에도 원산지 표시제를 도입, 미국 내에서 1백일 이상 사육되지 않은 쇠고기는 미국산으로 표시할 수 없다"는 법안을 지난주 통과시킨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 여러가지 규제를 풀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무역장벽을 낮춰 각종 원료와 상품들을 싸게 공급받은 것이 그동안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지금 부시 행정부와 의회는 중간 선거(오는 11월)에 눈이 멀어 소수 이해관계자들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유력 싱크탱크 가운데 하나인 카토연구소의 브링크 린제이 연구원의 말이다.

그는 이같은 보호주의 흐름은 결국 원가와 임금을 끌어올려 미국 경제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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