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이회창" 대세론 재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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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이 이회창(會昌)후보의 독주 속에 사실상 끝났다.

경선 과정은 줄곧 싱거웠다. 당내의 '이회창 대세론'을 재확인했을 뿐 국민적 관심을 끄는 데는 실패했다. 무엇보다 민주당 경선 때의 '노풍(風·노무현 지지 바람)'과 같은 극적인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다. 이회창 후보와 어깨를 겨룰 만한 강력한 라이벌은 출현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치열한 이슈논쟁도 없었고, TV 합동 토론회도 주목받지 못했다.

최병렬(崔秉烈)·이부영(富榮)후보의 '이회창 비판'은 갈수록 위축됐다. "이회창씨가 측근인 윤여준(尹汝雋)의원을 통해 최규선(崔圭善)씨에게서 2억5천만원을 받았다"는 민주당 설훈(薛勳)의원의 폭로는 최병렬·이부영 후보의 목소리를 위축시키는 쪽으로 작용했다. '이회창 대세론'은 경선 초반부터 위력을 발휘했다. "'노풍'을 단합으로 극복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薛의원의 폭로가 기름을 부었다. 한나라당 대의원들은 그것을 '이회창 죽이기'로 받아들였고, 이회창 후보를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물론 이회창 후보 캠프의 표 단속도 이런 결과를 부추겼다.

캠프 내에선 당초 "60% 내외의 지지율을 전략적 목표로 삼자"는 주장도 나왔다. 적당한 지지율이 경선의 모양에 도움이 되고, 흥행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런 지적은 "후보가 신승(辛勝)하면 6·13 지방선거 후 후보교체론이 등장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감에 덮여 버렸다. 1997년 대선 때 두 아들 병역문제로 인한 지지율 하락이 후보교체론으로 이어져 대선 직전까지 고생했기 때문이다.

최병렬·이부영 후보는 이런 표 단속을 '불공정 경선'이라며 반발했다. "경선 직전 이회창 후보측에서 지구당별로 지지도를 조사해 결과를 지구당위원장에게 통보하는 방식으로 의원 줄세우기를 벌였다"는 게 두 후보의 주장이다.

崔후보측은 이런 방식을 "살생부 작성"이라고 비판했다. 이부영 후보측은 "이회창 후보측이 부산·경남 등 일부지역 경선에서 최고위원 경선을 자신에 대한 지지율 제고의 수단으로 활용했다"고 지적했다.

득표율을 후보의 그 지역 최고위원 후보 지지에 연결시켰다는 의미다. 국민선거인단 참여율의 경우 20% 안팎이어서 이것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특히 투표율이 39.8%로 가장 낮았던 4일 경기지역 경선에선 "아주 미미한 숫자의 국민이 참여했다"고 김문수(金文洙)사무부총장은 밝혔다. 최병렬·이부영 후보측이 "민심과 당심(黨心)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어쨌든 이회창 후보는 경선을 통해 '대세론' 재점화에 성공했다.

특히 '노풍'의 진원지인 영남지역에서 압도적 지지를 이끌어냈다. 대구·경북은 83.6%, 부산·경남에선 70.1%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최병렬 후보의 영남대안론은 물거품이 됐다. 이회창 후보측은 "후보교체론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며 경선 후유증 수습을 서두르고 있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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