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도 효도도 "항상 즐겁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데뷔 24년째를 맞는 가수 현숙이 올해 발표한 앨범의 타이틀곡은 '나의 어머님'이다. 작사·작곡자인 가수 설운도는 "이 곡이 모녀간 사랑에 큰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진실로 그녀를 존경한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동료 가수로부터 '존경'까지 받게 만든 걸까.

그녀 앞에는 늘 '효녀 가수'라는 말이 붙어 다닌다. 그녀는 전북 김제에서 12남매 중 열한 째로 태어났다. 치매를 앓던 아버지는 1996년에 돌아가시고 현재 어머니는 7년째 식물인간으로 병석에 누워 계신다.

'오랜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은 현숙에겐 안 통한다. 혼정신성(昏定晨省: 조석으로 부모의 안부를 물어 살핌)이 그녀 일과의 처음과 끝이 된 지 오래다. 바쁜 연예인 생활하면서 해내기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일이 알려져 지난 해에는 효령대상 효행상을 받았다.

"어리고 가난할 때 어머니께 약속했거든요. 자라면 엄마 호강시켜 드린다고요." 그녀는 약속을 지켰다.

현숙은 지금 반짝하는 댄스 가수 못지 않게 바쁘다. 방송일도 그렇지만 아는 사람들 경조사, 그리고 노인들 위로잔치에 빠지지 않는다. 잠을 자면서 꿈을 꾸어본 기억이 없다고 그녀는 말한다. "잠잘 때 늘 기절하거든요."

한국에서 직업 가수로서의 평균수명은 얼마나 될까. 히트곡 하나만 있으면 전국 어느 밤 무대에서라도 노래 부르며 살 수 있지만 십 년 이상 TV 가요프로그램에 꾸준히 나올 수 있는 가수, 더구나 매년 신곡을 내면서 활동하는 가수는 그야말로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김제여고 재학 시절 그녀는 배구 선수였다. 합숙 훈련 기간 중 우연히 군산 KBS의 노래자랑에 친구와 함께 나가 노래 부른 게 일등을 함으로써 가요계에 입문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건설 바람이 한창이던 79년 '타국에 계신 아빠에게'로 데뷔한 후 모두 24개의 음반을 냈으니 정확하게 일년에 한 장씩 낸 셈이다. "가슴이 찡할까요"로 시작하는 그녀의 최고 히트곡 '정말로' 처럼 정말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녀는 야박한 가요계에서 드문 의리의 소유자다.

데뷔 때부터 작곡가이자 매니저로 도움을 준 김상범씨와 지금도 '분배'의 약속을 지킨다. '오뚝이 인생'이라는 노래의 주인공이기도 한 김씨는 현재 거동이 불편한 상태다.

패티김·이미자·양희은. 그들과는 또 다른 한쪽에 가수 현숙이 있다. 상냥하고 친절하고 애교 넘치기 때문에 오히려 스타로서 자신감이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은하계의 별들이 다 높아 보이고 멀어 보일 때 가족처럼 친숙하게 다가오는 스타의 존재도 분명 가치가 있다.

'예술'하는 가수도 있지만 '봉사'하는 가수도 많다. 현숙은 친근한 음악으로 '예술'도 하고 개인적·사회적으로 '봉사'에도 열심인 가수다. '요즘 여자 요즘 남자'를 라이브로 신나게 부르는 현숙을 보면 시골 초등학교 교실에 걸린 급훈이 생각난다.

"착하고 명랑하게 열심히 살자."

그녀는 무대 안팎에서 그걸 실천하는 중이다.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사진=안성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